2015년 7월 15일 수요일

이유 있는 길

이유 있는 길
심아진
마침내 경수는 소라 탑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친 경찰차들 앞에서 오토바이를 멈출 수 있었다. 경찰들을 보고 이렇게 안도감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최소한 무방비로 혼자 깔려 죽지는 않겠지 싶어 앞뒤 없이 브레이크를 잡아버렸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인지 시위 진압용으로 쓰는 살수차나 벽차 대신 여러 대의 경찰차가 청계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실수로 자살하는 이의 비명처럼 절박한 바퀴소리를 냈고, 경수는 왼쪽으로 가볍게 튕겨나갔다. 난반사하는 경광등의 불빛과 사이렌, 경찰들의 확성기 소음이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았다. 경수의 오토바이 뒤로 바짝 따라왔던 그것은 이제 거대한 회오리사탕처럼 둘둘 말린 채 정지해 있었다. 다행히, 정지한 것이었다.
경찰들은 인재라고도 자연 재해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 앞에 잔뜩 진장한 모습이었다. 그 중 두 명이 총을 겨누며 경수에게 다가와 수갑을 채웠다.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경수와 거대한 덩어리를 찍느라 야단이었다. 경수는 수갑을 찰 이유가 없다는 항변도 하지 못한 채, 긴 구간 자신과 함께 달려온 ‘길 덩어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파헤쳐진 청계천변의 길이 두꺼운 카펫 말린 모양으로 쓰러진 오토바이 뒤에 바투 붙어 있었다.
 
경수의 사건은 곧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남대문경찰서와 종로경찰서, 혜화경찰서 담당자들의 합동 수사가 진행되었다. 사건이 시작된 지점은 정확히 경수가 청계천로에 진입한 고산자교 부근이다. 일요일 오후 아홉 시경 경수의 오토바이가 달려가는 길을 따라, 청계천변의 차량 통행로가 깨지면서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수는 오토바이가 왕십리 부근을 지날 즈음에야 자신의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알게 된 연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어요. 제 오토바이 마후라 소리가 장난 아니거든요.”
경수는 불 꺼진 상가 쪽 인도에서 아이들인지 어른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몇몇 사람이 롤러 블레이드 타는 모습을 보았다. 보드나 블레이드를 타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도로로 튀어나오는 수가 종종 있었기에, 속도를 늦추었다. 그런데 속도를 늦추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본 순간, 그는 거대한 맷돌 덩어리 같은 것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경수는 그 돌덩어리가 자신을 덮치려 한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어쩌고 할 경황이 없었다. 경수는 그대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 묵직한 것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덩어리의 속도가 자신의 속도에 비례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동대문을 거의 다 지나갈 때쯤이었다. 경수는 오토바이를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는 바로 그 순간 점점 거대해진 그것이 자신을 납작하게 깔아뭉갤 것만 같아서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그 시간에 나 말고는 다른 차나 오토바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예요.”
경수는 아직도 온 몸이 후들거린다며 그 때 일을 회상했다. 경찰들이 조사해보니 사실이었다. 일요일 밤이라 워낙 통행량 자체가 없는 때이기도 했지만 사건이 발생한 약 15분가량의 시간 동안 동에서 서로 가는 청계천로에는 차가 전혀 없었다. 물론 반대편 쪽에는 차들이 다니고 있었고 보행자 도로에 드문드문 사람들도 있었다. 경찰들이 출동하게 된 것도 건너편 사람들의 신고 때문이었다. 경찰차는 중간에 경수의 경로에 진입하려다 몇 번을 놓치고 겨우 세종대로쪽 입구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게 된 것이었다. 경수는 자신 역시 신고를 위해 휴대폰을 꺼냈으나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전화기를 놓치고 말았다고 진술했다. 경찰들은 수족관이 즐비한 상가 건물 근처에서 깨진 휴대폰 하나를 발견하였다. 경수가 진술한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고서 경수는 더욱 당혹감을 느꼈다. 용기를 내서 멈춰볼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이 그의 오토바이는 휴일 통행금지를 표시하는 플라스틱 삼각대를 뚫고 지나갔다. 광통교 부근의 청계천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땅이 찢어지면서 튄 돌멩이 등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다. 다행히 둘둘 말린 덩어리는 착실하게 경수의 오토바이만을 따라 간 것인지, 직선 도로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왜 중간에 옆길로 새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경수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만약 나래교나 수표교 따위를 넘는데 그 놈이 거기도 따라왔다면 무게 때문에 다리가 무너졌을 걸요? 몇 번 그럴까 생각은 했지만 반대편은 다니는 차들도 있었고, 암튼 그놈은 제 뒤에 너무 바짝 붙어 있었다니까요.”
경수의 말은 타당성이 있었다. 그것의 직경은 거의 오십 미터에 육박하고 있었고 무게를 상상할 수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사건 때문에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경찰들은 우선 경수에게 몇 가지 경범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어떤 교통 카메라에도 경수가 신호를 위반하거나 규정 속도를 초과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게다가 경수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달렸다 하더라도 당시의 응급상황을 고려했을 때 큰 죄를 부과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 땅이 깨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 오토바이 머플러의 구조 변경 역시, 소음 측정기 결과 80 데시벨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처벌 대상이 되지 않았다. ‘부주의’ 어쩌고로 시작된 질문 역시, 누가 달리면서 매번 뒤를 돌아다보느냐는 경수의 조리 있는 반문에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서울의 자랑이며 시민들의 위안이라는 청계천로의 한쪽 길은 도륙당한 고기의 살처럼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과일 껍질처럼 땅이 벗겨질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땅 밑에 묻혀 있던 철근이며 배수관로가 훤히 내비쳤다. 마장동 부근에서 광화문까지 연결된 도로가 전면 통제되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반대편 차로는 물론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청계천변의 다리들은 모두 차단되었다. 차들이 해당 구간을 경유할 수 없게 되자 서울 전체의 교통 혼잡은 예상을 초월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근 상인들과 시민들의 불만의 소리가 끓어올랐다. 건설교통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각종 과학 단체에서 땅덩어리 혹은 돌덩어리로 불리는 그것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땅이 두루루 말렸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어떤 새로운 정황도 포착할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일부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기다려 마지않았던 종말의 도래라 짐작했음인지 개탄을 금치 않으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인간성을 상실하며 개발로만 치닫는 현 작태를 하늘이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환경 단체도 만만치 않게 깃발을 높이 세웠다. 생태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미관과 전시 효과만을 고려한 정부의 시도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녹색 옷을 입고 덩어리가 멈춘 곳에 모여들어 집회를 열었다. 거대한 달팽이 껍질처럼 말려 있는 도로를 보고 예술의 초극을 꿈꾸는 젊은 집단이 단체로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청계천의 역사를 연구하는 단체들이 숨은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며 새로운 조사 기관을 위한 보조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무속 연합에서는 광통교에 떠도는 신덕왕후의 원혼이 들고 일어난 것이라며 전 국민이 참여해 큰굿을 벌여야 한다는 내용의 연판장을 돌렸다.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개인과 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침내 정치권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연관 있는 부서 장관들의 개인적 비리가 공개되었고 여당과 야당간 책임 논란이 일었다. 어떤 절차와 방법에 의해서든 누군가는 사태를 짊어져야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희생양이 될 만큼 약하고 어리숙한 사람은 드물었다.
모종의 힘들이 경수를 지목하였다.
경수는 일단 무죄방면 되었지만 취조와 탐문을 위해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청계천과 그의 이름 석 자가 인터넷에서 검색어 순위 1위로 올랐다.
나이 28세. 거주지 마장동. 동대문 신평화시장 마네킹 도매업체 직원. 고향……. 취미……. 애정 관계…….
경수와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증언이 언론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소개 되었다. 동대문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서점에 가기를 좋아했다는 점이 알려지자마자 비의적 음모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댓글을 난사했다. “그에게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최종 결론이었다. 경수가 사는 마장동 월세집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우시장으로 유명한 그 동네에는 소의 원한이 사라지지 않는 몇 군데의 거점이 있는데, 경수가 세 들어 사는 집이 바로 그 거점 세 곳이 합쳐지는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의 고향에서 내려오는 ‘말하는 숲’ 전설을 인용하고 그럴 듯한 괴담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가 언젠가 버들 다리 위에 있는 전태일 동상을 어루만진 적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다른 사람은 그 사실로부터 종북주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경수가 근무하던 마네킹 업체는 몰려든 기자들로 몸살을 앓았다. 그 와중에 전위예술을 한다는 미인 예술가는 벌거벗은 존재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며 마네킹으로 변장해 청계광장에 서있기도 하였다.
경수의 일상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그는 동대문 시장의 여러 가게들을 전전하며 점원으로 일했다. 신발 도매 상가에 있기도 하였고, 공구상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전문 기술은 없었으며 주로 판매와 배달 업무를 하였고 ‘다방’이라는 간판이 달린 곳에 가끔 들르곤 했다. 열여덟에 고향을 떠난 뒤 십여 년, 마장동 일대의 월세방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지만 납입금 이백만원이 채 되지 않는 주택 통장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시장에서 알게 된 동료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날린 일도 있고, 가장 오래 일했던 타일 가게에서는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걸어온 길에 특별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다는 게 이상할 뿐일 정도로 경수의 생활은 평범했다. 하지만 경수에 대한 조사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거대한 덩어리는 여전히 청계광장에서 꼼짝을 않고 있었다. 즉시 그것을 치워야 한다는 의견과 역사적 사건의 기념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팽팽히 맞물려 덩어리의 거취는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교통은 여전히 엉망이었으며 일대를 오가야하는 많은 시민들의 불평은 높아가기만 하였다. 정치권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누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지에 대한 홍보성 제작물들이 사이버 망을 떠돌았다. 모두의 분노가 응집되어가고 있었다.
경수가 가장 의심을 받는 부분은 왜 하필 그 시간에 책을 사기 위해 청계천변을 이용해 교보문고까지 갈 생각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경수는 명쾌하게 “교보에는 책이 많잖아요”라고 대답했지만, 그렇게 간단명료한 동기는 쉽게 용인되지 않았다. 경수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허무맹랑한 자 하나가, 그 동안 경수가 산 책의 목록을 내려 필요한 몇 개의 단어들을 발췌하기 시작하였다. 열망, 동경, 바람, 제 자리, 모순, 새로운, 기회, 영원……. 여러 차례의 재판이 열렸다. 아무런 범법 행위도 찾을 수 없다는 처음의 판결과 달리 경수는 형법 제 87조 내란죄와 115조 소요죄 등에 의해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정을 받았다. 걱정 말라며 싸워보자던 국선 변호사는 판결 직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경수는 창살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책이 많잖아요”라는 말 외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서 사태가 이리 된 것은 아닐까 고민해보았다. 어쩌면 그가 서점에 너무 많이 들락거린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수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서점의 여직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기로 하였다. 이유 없이 그녀의 사진이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경수는 서럽고 암울한 마음이 되었다. 스물여덟 해를 멋지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사람 아닌 자신에게, 왜 하필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덩어리는 어째서 할리 데이빗슨 같은 오토바이를 따라가지 않은 것일까? 왜 한강이 아닌 청계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청계천변에서 한가로이 데이트를 해 본 적도 없는 자신이 어찌해서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경수는 그 밤을 떠올려보았다. 이상한 길 덩이에 쫓기며 청계천로를 달리다가 문득 건너편에 뜬 초승달을 본 기억이 났다. 지치고 비루한 일상들을 숨긴 불 꺼진 건물 위로 번뜩거리는 달이 떠 있었다. 경황없었던 그 순간에 어째서 그것이 눈에 들어왔을까? 그 가느다란 달은 마치 지금 경수가 있는 이 차가운 바닥처럼 생소하고 매정하게 느껴졌었다.
 
경수가 옥에 갇혀 눈썹 같은 달을 떠올린 바로 그 순간, 서울 시내, 전국 곳곳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도로가 깨지면서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며 환자를 수송하는 구급차, 음악을 크게 튼 승용차나 피자 배달 오토바이 뒤로 길이 깨지며 말려왔다. 마치 파를 채칼로 길게 썰 때 껍질이 도르르 말리는 것처럼 길들이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수가 그 날 밤 잠시 청계천로를 달렸던 딱 그 시간 동안, 전국의 수많은 길들이 동그랗게 말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경수의 오토바이 단 한 대였을 때 그렇게도 말이 많았던, 그리고 어떻게든 책임을 덮어씌우고야 말았던 그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 혹은 운전하고 있는 길 또한 언제 동그랗게 말려버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돌돌 말린 길덩어리들은 사람들의 동요나 불안이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잠잠했다.
경수는 다시 무죄방면 되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