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수요일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심아진
 
조심해야 합니다. 발이 땅에 닿으면서 생기는 진동이 아기 지빠귀들을 깨우지 않도록. 귀 끝에서 떨어져 나간 무분별한 털 하나가 멀리 있는 어미 지빠귀의 코를 간질이지 않도록. 조용히 빠르게, 오솔길을 가로지릅니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느라 녹지근하게 몸이 풀어진 풀들은 내 무게를 불만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네요. 거기 좀 더 세게 밟아 봐. 그들 중 하나가 내게 특별한 주문을 하더니, 친근한 척 인사를 건넵니다. 봄이 왔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해야만 하는 나는, 아주 금방 여럿 중에 하나가 되어버릴 그 풀에게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 새둥우리가 있는 나무까지 가야 하므로,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신중한 내 발걸음은 목표한 나무를 향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속도를 냅니다. 더 빠르게. 더 민첩하게!
아기 새들은 다급한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습니다. 나는 겨우내 완전히 소진해버린 단백질을 정신없이 보충합니다. 두 마리, 혹은 세 마리였을 텐데, 미처 세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보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입가에 묻은 붉은 피와 보드라운 깃털 몇 개를 닦아내며 만족스럽게 돌아섭니다. 하지만 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벌써 불안합니다. 누가 나를 본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도,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어야 합니다. 세상 온갖 일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버리는 너도밤나무의 가지와 잎들은 증인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저 아래 꽃들은 자신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테니 보아도 보지 않은 것과 다름 없을 것이고, 바람은 어차피 흘러서 흩어지는 노래만을 부를 테니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가?
나는 나를 볼 수도 있는 수백 개의 눈들을 미리 두려워합니다. 당신들은 자주 내 꼬리털이 지나치게 기름지거나 야무져 보이지 않아 순수하다고 말하고, 까만 내 눈이 잔인하거나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합니다. 당신들은 내 근면함을 본받고 싶어하고, 열심히 나무껍질을 갉는 모습을 보고 동정을 금치 못하기도 합니다. 인간들에게 나는 당근 조각이나 잣 등 피가 흐르지 않는 건전한 것만을 먹고 다니는 꿈같은 동물입니다. 당신들은 어찌나 나를 곱게 여기는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하기도 합니다.
새끼를 발견하는 경우, 따뜻한 물병과 버찌씨 쿠션으로 따뜻하게 해 주고, 꿀을 넣은 우유와 종합 영양 시럽을 먹일 것이며, 소화를 돕는 배 마사지를 해 주시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 앞에서 씨앗이나 열매, 버섯 등을 단정하게 안고서 기꺼이 사진에 찍혀주기도 합니다. 하!
 
이제 당신들은 내가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것이 나라고 확신하지 마세요. 내 이름이 날다람쥐든 청설모든, 프레리도그든 슈거 글라이더든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내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결코 당신들이 디즈니 만화영화 따위에서 그리는 작고 예쁜 인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실 다정하지도 깜찍하지도 않으며, 맑은 이슬에 목을 축이지도 않고 초저녁 달빛에 몸을 씻지도 않습니다. 나는 생물학적인 계통을 밟았을 때 어김없이 ‘쥐’에 속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깃털도 마르지 않은 새끼 새나 이제 곧 부화를 시작하려는 알, 심지어 작은 도마뱀이나 개구리까지 아주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치류에 속하는 나는 당연히 육식도 합니다. 도토리나 호두만을 굴리는 게 아니라 떨어진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고기도 뜯고 피도 마십니다.
때로 나는 콧수염에 검초록의 진흙이나 다른 동물의 분비물 따위를 묻힌 채 음습한 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때로 나는 생선뼈가 비린내를 풍기는, 대수롭잖게 잊힌 사체가 굴러다니는 시궁창에서의 끈적끈적한 밤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귀엽다고들 하는 표정으로 내가 무언가를 갉고 있는 것은 사실 끝없이 자라나는 아래 위 한 쌍의 앞니가 턱이나 두개골을 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6천만년을 이어온 유전자의 확고부동한 명령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내게는 천형인 그 행위를 놓고 당신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 나는 그저 허탈하게 웃곤 합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려는 노력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또한 선택하지 않았어도 내게 있습니다. 그래,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일정한 생활패턴을 유지하고 정해진 사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앞에 아몬드나 해바라기 씨 등을 들이밀며, 쭈쭈 거리는 당신들의 편견에 찬물을 끼얹을 용기가 없습니다. 푸른 안개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나, 허공에 뻗은 나뭇가지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나, 슬프고 조용하게 귀를 쫑긋거리는 나를 아주 잘 안다고 자신하는 당신들을 조롱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의 평판이 내 근육에 붙어 있는 피부처럼, 이제 내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곤합니다. 하지만 사랑스럽게 나를 보는 당신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앞니를 번쩍이며 커다란 알밤 한 알을 들어 보입니다. 미친 듯이 쳇바퀴를 돌면서 자학하지 않는 척, 즐거운 척 연기를 하기도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그 박수가 진심이라 나는 더욱 지칩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진 나는 엉덩이와 꼬리를 살짝 흔들어 준 후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수줍은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닙니다. 나는 먹을거리를 잔뜩 모아둔 안전한 내 동굴로 돌아옵니다. 동굴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안심하고 늙어버립니다. 그리고 다 먹지도 못할 비축된 양식들을 보며 비겁하게 혼자 뇌까립니다.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나도 나를 알지 못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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