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수요일

사이렌

사이렌
심아진
 
보도와 차도의 경계에서, 남자는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긴 채 걸음을 멈추었다. 파랑, 빨강으로 점멸하는 경고등을 통해 금세기를 뒤흔든 미해결 사건의 전말이라도 캐겠다는 듯, 남자의 시선은 열렬했다. 하지만 곧 무심하나 끈질긴 도시의 소음과 풍경이, 공간을 장악했던 경찰차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보행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천천히 우회전을 하던 내 눈에 남자가 들어왔다. 횡단보도를 건널 참이었던 그는 안간힘을 다해 후줄근함을 떨쳐내고 있는 청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닦을 날을 미루기만 했을 허름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경찰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아직도 소심하게 고개를 돌린 채 서 있는 남자는 돌아갈 길을 잃은 애완견처럼 불안해보였다. 나는 쥘 이유도 펼 이유도 없어 보이는 그의 손가락들이 나른하게 흔들리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날 밤, 나는 남편과 잠을 자다가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다. 이 봐, 물 좀 줘. 남편과 비슷하게 생긴 그는 당당하게 말하는 것만이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 거침없이 내게 요구했다. 나는 곧 그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남편의 아버지, 곧 내 시아버지란 것을 알아보았다. 자기 전에 켜 둔 수면등이 비교적 선명하게 그의 모습을 비춰내고 있었다. 정수기에서 물 한잔을 받아 시아버지에게 건네주자 그는 급하게 물을 들이켜고 말했다. 생활이 나를 살렸다. 먹고 살기 빠듯했으니까,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어도 괜찮았단 말이다. 나는 남편이 자주 ‘생활’을 언급하곤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시아버지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애정 따위를 다급하게 몰아내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물방울이 묻은 입언저리를 닦아내고는 남편의 옆에 반듯이 누웠다. 잠이 깨서 다시 잠들기 어려워진 나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는 듯, 시아버지는 금방 코를 골았다.
고단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는 것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낮에 보았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억지로 안도하며 꺼내곤 하였을 옷과 신발이 생각난 것뿐인지도 몰랐다. 그것들은 모두 절망적인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 순결해진 거리가 떠올랐다.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다양하게 소통시키던 사람들은 경찰차가 대로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순간, 지극히 단순해졌었다. 하나의 거대한 소리가 자존심을 버리는데 익숙한 사람들의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한꺼번에 삼켜 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 정적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며 괴로워하다가 까무룩, 다시 잠이 들었다.
또 한 번 누군가가 나를 깨운 것은, 하염없이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는 꿈을 꾸고 있는 와중이었다. 소의 연골처럼 생긴 것을 무릎에 덕지덕지 바른 늙은 여자가 내 얼굴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묻어 있던 뽀얀 것이 내 잠옷의 어깨 부분에도 조금 묻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여자는 아픈 무릎이 자랑스럽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듯 득의에 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배우지 않았기에 살 수 있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았다면 애들을 키워내지 못했을 거다. 그녀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 척하기 위해 원래 자신의 표정을 잃어버린 내 시어머니였다. 남편은 늘 어머니의 무릎을 안쓰러워했었다. 나는 남편의 옆에 잠들어 있는 시아버지를 곁눈질하며 아까처럼 물이라도 떠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내 생각을 알았는지 차갑게 말했다. 냉수라면 마실 만큼 마셨다. 내 아들이 너와 결혼할 때부터 말이다. 시어머니는 거칠고 주름진 손으로 잠든 당신 아들의 얼굴을 쓸었는데, 그는 감은 눈을 씰룩였을 뿐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시어머니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사이에 누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잘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자리에 도로 누웠다. 침대가 너무 비좁았다. 그러니까 두 명이 자면 딱 맞는 침대에서 네 명의 어른들이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남편의 살이 내게 아주 많이 닿았는데, 그의 피부는 땀이 배어 나와 끈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극도로 예민해져서 누군가가 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시아버지보다 더 늙었지만 시아버지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아버지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뭐가 필요하세요? 나는 일어나 앉으며, 그가 나를 두드리거나 흔들지 않아도 내가 이미 깨어 있다는 것을 알렸다. 우리 시절엔 말이다. 그는 ‘우리’의 ‘우’자를 약간 세게 발음했는데, ‘우리’를 강조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저 그렇게 말하는데 더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약간 다소곳해 보일 수 있겠다 싶은 자세로 섰다. 그러니까 어떤 명령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는 사람처럼 두 손을 앞으로 살짝 모으고 섰던 것이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아버지일 것이라 짐작되는 사람은 내게 아무것도 부탁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다. 우리는 고기도 낚았고, 장기도 두었고, 장례도 치렀고, 닭도 잡았다. 물론 가끔은 아편 같은 걸 하다가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투전판에서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는 늘 우리였다. 나는 그가 강조하는, 그리고 평소 남편이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하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팔짱을 꼈다. 아마 다소 건방져 보이는 동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공감하든 공감하지 못하든 상관없다는 듯 나의 자리, 곧 남편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누워버렸다. 우리였던 당신의 시절엔 늘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듯이. 졸지에 자리를 빼앗긴 나는 일렬로 늘어선 발을 바라보며 침대 아래쪽에 서 있었다. 하얗거나 붉거나 시커먼 발바닥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추기라도 한 듯 다양한 모양의 굳은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하릴없이 내 두 발을 비벼댔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내 착각을 짚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듯, 시아버지의 아버지는 잠들기 전에 잠꼬대처럼 한 마디를 더 했다. 나는 네 시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니라 시아버지의 큰아버지다.
나는 잠을 아예 포기해 버리고 침대에 누운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잠자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아슬아슬한 표정이었는데, 정말 잠이 든 것인지 잠자는 척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남편의 오른손을 잡고 있는 시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왼손, 남편의 왼손을 잡고 있는 시어머니의 오른손, 그리고 시어머니의 왼손을 잡고 있는 시아버지의 오른손을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앞사람을 놓치지 말라는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은 유치원생들처럼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침대 양 옆에 늘어진 시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오른손과 시아버지의 왼손 중 하나를 내가 잡아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 모두 사진으로 본 기억이 있었다. 제 남편의 선생님들이시죠? 그들은 기특한 제자를 바라볼 때 짓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내가 그들의 제자는 아니지만 제자의 아내라면 제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중 머리가 벗겨진 선생이 피곤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비비며 입을 열었다. 난 다 알려줄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내가 배운 한도 내에서 가르칠만한 것을 가르쳤을 뿐이다. 어쩐 일인지 나는 좀 화가 나서 따지듯 물어보았다. 어떤 기준에서 가르칠만한 게 있고, 가르칠만하지 않은 게 있다는 겁니까? 다른 선생이 대머리 선생을 대신해 비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역시 왜곡된 것을 왜곡된 것인지 모르고 배웠을 뿐이야. 우리는 그저 배운 대로 가르쳤을 뿐이라니까. 또 우리군요. 그들은 내가 왜 ‘우리’에 민감해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애원조로 말했다. 너무 피곤하구나. 자리를 좀 만들어주면 안되겠니? 나는 침대 왼쪽에 있는 붙박이장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냈다. 두 선생은 침대 발치에 요를 펴고 나란히 누워 마주한 쪽의 손을 서로 잡았다. 침대에 가까이 있는 선생이 남편의 발에 손을 얹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남편의 발이라도 잡고 있다면 굳이 침대에 눕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스승들이 자신을 방문했다는 것을 알면 남편은 당장 술상이라도 봐야한다며 부산을 떨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깊은 수면 상태에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잠을 자는 그들은 실로 다양한 소리를 냈다. 어금니를 갈거나 앞니를 딱딱거렸고, 한숨을 쉬거나 코를 골았으며 또 가끔 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침대 시트와 이불들이 처량하고 고단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게 여겨지는 그 소리들을 비범하게 찢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듯하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와 동시에 깨지고 말았다.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남편과 나의 방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이제 그 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편과 나의 침실로 찾아왔는지 얘기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 될 것이다. 남편의 힘센 고모와 간이 좋지 않았던 외삼촌, 또 함께 다락방을 들락거렸던 사촌 형을 비롯해 담배를 나눠 피웠던 친구, 남편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의 첫 여자, 그리고 알리바이를 공유했던 직장 상사들까지, 남편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불어났다. 그들은 여럿이 소란스럽게 들어오기도 했고 슬그머니 혼자 들어오기도 했으며, 스스럼없이 내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 잠자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곧 냉장고는 텅 비었고, 내어줄 이불과 베개도 동이 났다. 방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병렬 혹은 직렬로 연결된 꼬마전구들처럼 가로로 혹은 세로로 이어지다가 나중에는 정글의 넝쿨들처럼 지그재그로 얽혔다. 누군가는 원숭이마냥 가구 위에 올라갔고, 누군가는 인간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온 방을 빼꼭히 메운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남편의 머리카락 한 올, 옷깃 하나라도 부여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남편은 사람들의 아래에 깔려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쪼그려 앉을 수도 없게 된 나는 구석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뒤척이거나 코를 골거나 잠꼬대 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소리와 피로, 소리와 잠……. 불현듯 그 몽롱한 소리의 장막들을 찢으며 생경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지극히 무례하게, 겹겹의 세상을 재빨리 열고 또 서둘러 닫아버렸던 폭력적인 그 소리.
 
우회전 깜빡이를 넣으며 핸들을 꺾고 있던 나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남자이기도 했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남자이기도 했다. 경찰차가 삐용거리며 사거리를 크게 돌았던 그 짧은 순간, 나는 남자가 자신의 방어적인 일상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일부러 호기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찰차의 소리에 몰입한 그의 모습은 길고 복잡한 역사를 고의적으로 단순해 보이게 만들려는 듯 작위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짧은 시간을 그러쥔 채 자신에게 엉켜든 것들로부터 간절히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을 보았다. 그것은 썩 유쾌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사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후줄근해져버린 청회색 양복이나 영영 닦지 못할 구두만큼 남루한 장면이었다.
엑셀을 밟아 속도를 내면서 나는 내가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흘린 게 눈물 따위는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다. 남자는 내 남편이었고 또 수많은 다른 이들의 남편이었으며, 그리고 너무나 명백하게도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목을 길게 뺐다가 매우 아쉽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남자가 백미러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았다. 세상을 여는 뻔뻔한 사이렌 속에 무언가 소중한 것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듯 남자의 표정은 진지했다. 쥘 이유도 펼 이유도 없어 보이는 그의 손가락들이 자조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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