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수요일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심아진
 
우리 집 강아지는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가끔 창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는 모습을 보면 호기심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산책을 나가자고 말하면 야단맞을 때처럼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애처롭게 죽는 시늉을 한다. 저나 나나 건강을 생각해야 하니, 억지로 차비를 하고 나간다. 아무도 없는 길은 잘 다닌다. 새로운 냄새도 맡고 신선한 공기도 쐬고,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사람이나 동물이 나타나면 움직이지 않고 격렬하게 짖는다. 무서워서 죽을 지경이라는 것을 녀석이 말 안 해도 나는 안다. 그러니 산책은 늘 강아지의 산책이 아니라 녀석을 안고 다니는-안으면 비로소 안심했다는 듯 짖지 않는다- 나의 노동으로 끝나고 만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2학년 때 담임이었던 할머니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셨다가 다시 우리 학교로 오셨다. 그분께서 반색을 하며 나를 아는 체 하셨다.
“정말 대단한 아이였어요.”
교무실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을 둘러보며 꺼낸 첫 마디였다. 얘기인즉슨 당시 자신이 여러 번의 수술을 거쳐 몸이 너무 아파 말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어린 내가 눈빛만 보고도 선생님이 원하는 걸 알고 야무지게 해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눈빛만 보고도’를 여러 번 강조하셨다. 칭찬해 주시는 소리였지만 나는 부끄러워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겨우 아홉 살, 무슨 눈치가 그렇게 빨랐던 것일까? 선생님의 칭찬 아닌 칭찬은 오랫동안 나를 자괴감에 빠뜨렸다.
중학생이 되었다. 작은 동네여서인지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 중 많은 분들이 가까운 나의 친지들과 아는 사이였다. 신경 써주느라 굳이 친지들을 들먹이며 불러내는 선생님들 때문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무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은데 상황은 자꾸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특히 인기 있는 남자 선생님의 관심은 그대로 내게 독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필요 없는 변명을 해대느라 진땀을 뺐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재수가 없었던지, 시골 동네에서 한 번 날까말까 한 수재 선배의 뒤를 내가 이어야 했다.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참가했던 모든 대회를 나도 참가했다. 대부분 예선에서 탈락했고 나는 학교 명예에 먹칠을 하는 후배가 되었다. 최악은 장학퀴즈였다. 정답 ‘신선로’를 ‘전골’이라고 답한 뒤로 나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혀를 내밀었다 넣었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보 같은 내 얼굴이 시골 동네에 알려졌다. 내가 결코 원한 게 아닌데 말이다.
대학생이 되었다.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울까봐 강의가 끝나면 허둥지둥 책을 챙겨 기숙사로 달아났다. 꼭 가야만 하는 것인 줄 알고 갔던 전체 M.T를 제외하고 더 이상 단체 생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처럼 캠퍼스에서의 내 걸음은 지나치게 빨랐다. 마지막 학기에 촬영 실습을 하면서 다시금 브라운관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기겁을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실습실을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왜 과민하게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썼는지, 왜 그들의 생각을 크게 느꼈는지, 왜 밤새 잠을 못 이루며 시시한 것들을 곱씹고 있었는지를 안다. ‘나’, 이 세상에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나의 조각이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자 했을 때, 혹은 억지로 바꾸고자 했을 때 나는 늘 진땀을 흘리며 이전보다 더 혹독한 자학을 일삼아야 했다. 그래서 마음을 좀 바꿨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아마 그런 자포자기가 소설을 쓸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소심하고 예민하며 과대망상을 일삼았던 시간들이 결국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지금의 내 소설이 편집증적인 폐쇄성을 보인다고 한다면,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폐쇄성을 딛고 일어서서 심미적 개방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문학은 꼬질꼬질하고 빈약한 세계도, 헌걸차고 호방한 세계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커다란 문학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 문학을 의지한다.


  날이 좋아지면 강아지와 산책을 좀 더 할 것이다. 자주 데리고 나가면, 열 번 짖을 거 한 두 번쯤 덜 짖지 않을까. 그러나 많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집 강아지는 동네의 모든 사람들에게 반갑게 꼬리를 치는 그런 강아지는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주인을 닮는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시키지 않은 내 탓일 것이다. 그러나 대신 집에서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는 걸로 만족하지 않을까? 강아지의 마음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이렇게 소설을 쓰고 있는 걸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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