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수요일

Wanted a good Translator

The 3 ways are translated by a good translator.

[Given~~] is translated by myself.

I really need a good translator.

Novel Ahjin

Finally I decided to come out.

The way I talk to (and maybe hear from) the world is writing including minifictions, short stories, novels and so on.

I am not sure how long I can reveal myself.

But this is a start.




사이렌

사이렌
심아진
 
보도와 차도의 경계에서, 남자는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긴 채 걸음을 멈추었다. 파랑, 빨강으로 점멸하는 경고등을 통해 금세기를 뒤흔든 미해결 사건의 전말이라도 캐겠다는 듯, 남자의 시선은 열렬했다. 하지만 곧 무심하나 끈질긴 도시의 소음과 풍경이, 공간을 장악했던 경찰차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보행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천천히 우회전을 하던 내 눈에 남자가 들어왔다. 횡단보도를 건널 참이었던 그는 안간힘을 다해 후줄근함을 떨쳐내고 있는 청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닦을 날을 미루기만 했을 허름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경찰차가 사라진 방향으로 아직도 소심하게 고개를 돌린 채 서 있는 남자는 돌아갈 길을 잃은 애완견처럼 불안해보였다. 나는 쥘 이유도 펼 이유도 없어 보이는 그의 손가락들이 나른하게 흔들리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날 밤, 나는 남편과 잠을 자다가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다. 이 봐, 물 좀 줘. 남편과 비슷하게 생긴 그는 당당하게 말하는 것만이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 거침없이 내게 요구했다. 나는 곧 그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남편의 아버지, 곧 내 시아버지란 것을 알아보았다. 자기 전에 켜 둔 수면등이 비교적 선명하게 그의 모습을 비춰내고 있었다. 정수기에서 물 한잔을 받아 시아버지에게 건네주자 그는 급하게 물을 들이켜고 말했다. 생활이 나를 살렸다. 먹고 살기 빠듯했으니까,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았어도 괜찮았단 말이다. 나는 남편이 자주 ‘생활’을 언급하곤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시아버지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애정 따위를 다급하게 몰아내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물방울이 묻은 입언저리를 닦아내고는 남편의 옆에 반듯이 누웠다. 잠이 깨서 다시 잠들기 어려워진 나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는 듯, 시아버지는 금방 코를 골았다.
고단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는 것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낮에 보았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억지로 안도하며 꺼내곤 하였을 옷과 신발이 생각난 것뿐인지도 몰랐다. 그것들은 모두 절망적인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 순결해진 거리가 떠올랐다.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다양하게 소통시키던 사람들은 경찰차가 대로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순간, 지극히 단순해졌었다. 하나의 거대한 소리가 자존심을 버리는데 익숙한 사람들의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한꺼번에 삼켜 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 정적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며 괴로워하다가 까무룩, 다시 잠이 들었다.
또 한 번 누군가가 나를 깨운 것은, 하염없이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는 꿈을 꾸고 있는 와중이었다. 소의 연골처럼 생긴 것을 무릎에 덕지덕지 바른 늙은 여자가 내 얼굴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묻어 있던 뽀얀 것이 내 잠옷의 어깨 부분에도 조금 묻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여자는 아픈 무릎이 자랑스럽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듯 득의에 찬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배우지 않았기에 살 수 있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았다면 애들을 키워내지 못했을 거다. 그녀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 척하기 위해 원래 자신의 표정을 잃어버린 내 시어머니였다. 남편은 늘 어머니의 무릎을 안쓰러워했었다. 나는 남편의 옆에 잠들어 있는 시아버지를 곁눈질하며 아까처럼 물이라도 떠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내 생각을 알았는지 차갑게 말했다. 냉수라면 마실 만큼 마셨다. 내 아들이 너와 결혼할 때부터 말이다. 시어머니는 거칠고 주름진 손으로 잠든 당신 아들의 얼굴을 쓸었는데, 그는 감은 눈을 씰룩였을 뿐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시어머니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사이에 누웠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잘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자리에 도로 누웠다. 침대가 너무 비좁았다. 그러니까 두 명이 자면 딱 맞는 침대에서 네 명의 어른들이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남편의 살이 내게 아주 많이 닿았는데, 그의 피부는 땀이 배어 나와 끈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극도로 예민해져서 누군가가 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시아버지보다 더 늙었지만 시아버지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아버지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뭐가 필요하세요? 나는 일어나 앉으며, 그가 나를 두드리거나 흔들지 않아도 내가 이미 깨어 있다는 것을 알렸다. 우리 시절엔 말이다. 그는 ‘우리’의 ‘우’자를 약간 세게 발음했는데, ‘우리’를 강조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저 그렇게 말하는데 더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약간 다소곳해 보일 수 있겠다 싶은 자세로 섰다. 그러니까 어떤 명령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는 사람처럼 두 손을 앞으로 살짝 모으고 섰던 것이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아버지일 것이라 짐작되는 사람은 내게 아무것도 부탁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다. 우리는 고기도 낚았고, 장기도 두었고, 장례도 치렀고, 닭도 잡았다. 물론 가끔은 아편 같은 걸 하다가 패가망신하기도 하고 투전판에서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는 늘 우리였다. 나는 그가 강조하는, 그리고 평소 남편이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하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팔짱을 꼈다. 아마 다소 건방져 보이는 동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공감하든 공감하지 못하든 상관없다는 듯 나의 자리, 곧 남편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누워버렸다. 우리였던 당신의 시절엔 늘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듯이. 졸지에 자리를 빼앗긴 나는 일렬로 늘어선 발을 바라보며 침대 아래쪽에 서 있었다. 하얗거나 붉거나 시커먼 발바닥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추기라도 한 듯 다양한 모양의 굳은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하릴없이 내 두 발을 비벼댔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내 착각을 짚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듯, 시아버지의 아버지는 잠들기 전에 잠꼬대처럼 한 마디를 더 했다. 나는 네 시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니라 시아버지의 큰아버지다.
나는 잠을 아예 포기해 버리고 침대에 누운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잠자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아슬아슬한 표정이었는데, 정말 잠이 든 것인지 잠자는 척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남편의 오른손을 잡고 있는 시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왼손, 남편의 왼손을 잡고 있는 시어머니의 오른손, 그리고 시어머니의 왼손을 잡고 있는 시아버지의 오른손을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앞사람을 놓치지 말라는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은 유치원생들처럼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침대 양 옆에 늘어진 시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오른손과 시아버지의 왼손 중 하나를 내가 잡아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 모두 사진으로 본 기억이 있었다. 제 남편의 선생님들이시죠? 그들은 기특한 제자를 바라볼 때 짓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내가 그들의 제자는 아니지만 제자의 아내라면 제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중 머리가 벗겨진 선생이 피곤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이마를 비비며 입을 열었다. 난 다 알려줄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내가 배운 한도 내에서 가르칠만한 것을 가르쳤을 뿐이다. 어쩐 일인지 나는 좀 화가 나서 따지듯 물어보았다. 어떤 기준에서 가르칠만한 게 있고, 가르칠만하지 않은 게 있다는 겁니까? 다른 선생이 대머리 선생을 대신해 비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역시 왜곡된 것을 왜곡된 것인지 모르고 배웠을 뿐이야. 우리는 그저 배운 대로 가르쳤을 뿐이라니까. 또 우리군요. 그들은 내가 왜 ‘우리’에 민감해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애원조로 말했다. 너무 피곤하구나. 자리를 좀 만들어주면 안되겠니? 나는 침대 왼쪽에 있는 붙박이장에서 이불과 베개를 꺼냈다. 두 선생은 침대 발치에 요를 펴고 나란히 누워 마주한 쪽의 손을 서로 잡았다. 침대에 가까이 있는 선생이 남편의 발에 손을 얹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남편의 발이라도 잡고 있다면 굳이 침대에 눕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스승들이 자신을 방문했다는 것을 알면 남편은 당장 술상이라도 봐야한다며 부산을 떨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깊은 수면 상태에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잠을 자는 그들은 실로 다양한 소리를 냈다. 어금니를 갈거나 앞니를 딱딱거렸고, 한숨을 쉬거나 코를 골았으며 또 가끔 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침대 시트와 이불들이 처량하고 고단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게 여겨지는 그 소리들을 비범하게 찢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듯하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새벽 두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와 동시에 깨지고 말았다.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남편과 나의 방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이제 그 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편과 나의 침실로 찾아왔는지 얘기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 될 것이다. 남편의 힘센 고모와 간이 좋지 않았던 외삼촌, 또 함께 다락방을 들락거렸던 사촌 형을 비롯해 담배를 나눠 피웠던 친구, 남편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의 첫 여자, 그리고 알리바이를 공유했던 직장 상사들까지, 남편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불어났다. 그들은 여럿이 소란스럽게 들어오기도 했고 슬그머니 혼자 들어오기도 했으며, 스스럼없이 내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 잠자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곧 냉장고는 텅 비었고, 내어줄 이불과 베개도 동이 났다. 방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병렬 혹은 직렬로 연결된 꼬마전구들처럼 가로로 혹은 세로로 이어지다가 나중에는 정글의 넝쿨들처럼 지그재그로 얽혔다. 누군가는 원숭이마냥 가구 위에 올라갔고, 누군가는 인간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온 방을 빼꼭히 메운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남편의 머리카락 한 올, 옷깃 하나라도 부여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남편은 사람들의 아래에 깔려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쪼그려 앉을 수도 없게 된 나는 구석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뒤척이거나 코를 골거나 잠꼬대 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소리와 피로, 소리와 잠……. 불현듯 그 몽롱한 소리의 장막들을 찢으며 생경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지극히 무례하게, 겹겹의 세상을 재빨리 열고 또 서둘러 닫아버렸던 폭력적인 그 소리.
 
우회전 깜빡이를 넣으며 핸들을 꺾고 있던 나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남자이기도 했고,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남자이기도 했다. 경찰차가 삐용거리며 사거리를 크게 돌았던 그 짧은 순간, 나는 남자가 자신의 방어적인 일상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일부러 호기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찰차의 소리에 몰입한 그의 모습은 길고 복잡한 역사를 고의적으로 단순해 보이게 만들려는 듯 작위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짧은 시간을 그러쥔 채 자신에게 엉켜든 것들로부터 간절히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을 보았다. 그것은 썩 유쾌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사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후줄근해져버린 청회색 양복이나 영영 닦지 못할 구두만큼 남루한 장면이었다.
엑셀을 밟아 속도를 내면서 나는 내가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흘린 게 눈물 따위는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럴 수 없었다. 남자는 내 남편이었고 또 수많은 다른 이들의 남편이었으며, 그리고 너무나 명백하게도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목을 길게 뺐다가 매우 아쉽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남자가 백미러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았다. 세상을 여는 뻔뻔한 사이렌 속에 무언가 소중한 것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듯 남자의 표정은 진지했다. 쥘 이유도 펼 이유도 없어 보이는 그의 손가락들이 자조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심아진
 
조심해야 합니다. 발이 땅에 닿으면서 생기는 진동이 아기 지빠귀들을 깨우지 않도록. 귀 끝에서 떨어져 나간 무분별한 털 하나가 멀리 있는 어미 지빠귀의 코를 간질이지 않도록. 조용히 빠르게, 오솔길을 가로지릅니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느라 녹지근하게 몸이 풀어진 풀들은 내 무게를 불만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네요. 거기 좀 더 세게 밟아 봐. 그들 중 하나가 내게 특별한 주문을 하더니, 친근한 척 인사를 건넵니다. 봄이 왔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해야만 하는 나는, 아주 금방 여럿 중에 하나가 되어버릴 그 풀에게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나는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 새둥우리가 있는 나무까지 가야 하므로,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신중한 내 발걸음은 목표한 나무를 향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속도를 냅니다. 더 빠르게. 더 민첩하게!
아기 새들은 다급한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했습니다. 나는 겨우내 완전히 소진해버린 단백질을 정신없이 보충합니다. 두 마리, 혹은 세 마리였을 텐데, 미처 세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보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입가에 묻은 붉은 피와 보드라운 깃털 몇 개를 닦아내며 만족스럽게 돌아섭니다. 하지만 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벌써 불안합니다. 누가 나를 본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도,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어야 합니다. 세상 온갖 일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버리는 너도밤나무의 가지와 잎들은 증인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저 아래 꽃들은 자신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테니 보아도 보지 않은 것과 다름 없을 것이고, 바람은 어차피 흘러서 흩어지는 노래만을 부를 테니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누군가가?
나는 나를 볼 수도 있는 수백 개의 눈들을 미리 두려워합니다. 당신들은 자주 내 꼬리털이 지나치게 기름지거나 야무져 보이지 않아 순수하다고 말하고, 까만 내 눈이 잔인하거나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고 칭찬합니다. 당신들은 내 근면함을 본받고 싶어하고, 열심히 나무껍질을 갉는 모습을 보고 동정을 금치 못하기도 합니다. 인간들에게 나는 당근 조각이나 잣 등 피가 흐르지 않는 건전한 것만을 먹고 다니는 꿈같은 동물입니다. 당신들은 어찌나 나를 곱게 여기는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권고하기도 합니다.
새끼를 발견하는 경우, 따뜻한 물병과 버찌씨 쿠션으로 따뜻하게 해 주고, 꿀을 넣은 우유와 종합 영양 시럽을 먹일 것이며, 소화를 돕는 배 마사지를 해 주시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 앞에서 씨앗이나 열매, 버섯 등을 단정하게 안고서 기꺼이 사진에 찍혀주기도 합니다. 하!
 
이제 당신들은 내가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것이 나라고 확신하지 마세요. 내 이름이 날다람쥐든 청설모든, 프레리도그든 슈거 글라이더든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내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결코 당신들이 디즈니 만화영화 따위에서 그리는 작고 예쁜 인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실 다정하지도 깜찍하지도 않으며, 맑은 이슬에 목을 축이지도 않고 초저녁 달빛에 몸을 씻지도 않습니다. 나는 생물학적인 계통을 밟았을 때 어김없이 ‘쥐’에 속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깃털도 마르지 않은 새끼 새나 이제 곧 부화를 시작하려는 알, 심지어 작은 도마뱀이나 개구리까지 아주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치류에 속하는 나는 당연히 육식도 합니다. 도토리나 호두만을 굴리는 게 아니라 떨어진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고기도 뜯고 피도 마십니다.
때로 나는 콧수염에 검초록의 진흙이나 다른 동물의 분비물 따위를 묻힌 채 음습한 골목을 누비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때로 나는 생선뼈가 비린내를 풍기는, 대수롭잖게 잊힌 사체가 굴러다니는 시궁창에서의 끈적끈적한 밤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귀엽다고들 하는 표정으로 내가 무언가를 갉고 있는 것은 사실 끝없이 자라나는 아래 위 한 쌍의 앞니가 턱이나 두개골을 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6천만년을 이어온 유전자의 확고부동한 명령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내게는 천형인 그 행위를 놓고 당신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 나는 그저 허탈하게 웃곤 합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려는 노력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또한 선택하지 않았어도 내게 있습니다. 그래,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일정한 생활패턴을 유지하고 정해진 사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앞에 아몬드나 해바라기 씨 등을 들이밀며, 쭈쭈 거리는 당신들의 편견에 찬물을 끼얹을 용기가 없습니다. 푸른 안개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나, 허공에 뻗은 나뭇가지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는 나, 슬프고 조용하게 귀를 쫑긋거리는 나를 아주 잘 안다고 자신하는 당신들을 조롱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의 평판이 내 근육에 붙어 있는 피부처럼, 이제 내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곤합니다. 하지만 사랑스럽게 나를 보는 당신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앞니를 번쩍이며 커다란 알밤 한 알을 들어 보입니다. 미친 듯이 쳇바퀴를 돌면서 자학하지 않는 척, 즐거운 척 연기를 하기도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그 박수가 진심이라 나는 더욱 지칩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진 나는 엉덩이와 꼬리를 살짝 흔들어 준 후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수줍은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닙니다. 나는 먹을거리를 잔뜩 모아둔 안전한 내 동굴로 돌아옵니다. 동굴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안심하고 늙어버립니다. 그리고 다 먹지도 못할 비축된 양식들을 보며 비겁하게 혼자 뇌까립니다.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나도 나를 알지 못한답니다.

회귀

회귀
심아진

남자의 어머니는 조금도 분노하지 않았다는 듯 차분하게 비닐봉지를 뒤집는다. 그런 절도 있는 동작과는 대조적으로, 빨갛게 윤나는 사과들은 처량한 소음을 만들며 떨어져 내린다. 쉽게 멍들고 깊숙이 깨지는 소리가 거리를 울린다. 여자는 비탈길을 따라 굴러 내려가는 사과들을 무력하게 바라본다. 열 개만 사려던 것을 스무 개나 산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신처럼 남자의 어머니도 사과를 좋아할 것이라며 욕심을 냈었다. 남자의 어머니는 다만 사과가 너무 많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뿐인지 모른다. 여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
사과들은 여자의 아쉬운 눈초리에 아랑곳없이 제 갈 길이 바쁘다는 듯 몇 갈래의 길로 흩어지고 만다.
“어머니…….”
제게 주었던 것과 똑같은 환대를 여자에게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남자는 황망히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본다. 짧은 속눈썹 아래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 여태 무언가를 ‘오해’했던 자가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을 때의 무력함이 어린다. 그는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전화번호를 떠올리려는 사람처럼 진지하고 허망하다. 남자의 어머니는 당신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흔한 대사를 읊조린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여자는 두 사람의 대화를 건성으로 들으며 굴러 내려간 사과들의 자취를 뒤쫓는다. 어떤 것은 첫 번째 골목으로 어떤 것은 두 번째 골목으로 꺾어져 들어갔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골목이 아닌 큰 길을 따라 우르르 내려가던 사과들이 어디쯤 정착해 있을 지 궁금하지만, 도로가 굽어지면서 사과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집은 무심하게 높고 과도하게 경사진 곳에 자리해 있다. 스무 개의 사과 중 어느 것 하나도 여자의 발치 아래에 남지 않았다. 남자의 어머니가 좋아한다던 사과들은 남자의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는 여자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여자는 결코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삼 년이 흐른다. 남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삼십 년을 함께 산 어머니와의 정이 더 커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무력함을 비웃기 위함인지, 혹은 그저 인생에서 사랑 따위가 시시해져 버려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남자는 여자를 떠난다. 여자는 원망하지 않는다. 조금 거칠어지고, 미약하게나마 강해졌을 뿐이다. 남자는 어머니의 집에서 가능한 먼 곳에 신혼집을 마련한다.
 
다시 삼 년이 흐른다.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사과를 먹지 않는다. 여자가 사과를 먹지 않아서 여자의 가족들도 사과를 먹지 못한다. 여자는 오로지 꿈에서만 사과를 본다. 갈색의 멍을 숨긴 도도한 사과가 꿈에서 깨어난 여자의 시간을 잠식하기도 한다. 여자는 가끔 사과가 만들어주는 멍을 가슴에 새긴다. 또 가끔은 사과가 줄 수 있을 아삭한 감촉에 군침을 흘리기도 한다. 사과를 먹지 않는 여자는, 다른 사람의 삶과 똑같은 무난한 삶이 자신에게도 전개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십 년이 더 흐른 어느 날, 남자는 대학 병원 부설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를 보낸다. 그는 영정 앞에서 여자가 떠오르는 자신을, 패륜아라 생각지는 않는다. 남자는 불현듯 여자와 어머니가 대면한 날 이리저리 흩어졌던 사과의 행방을 궁금해 한다. 비탈길의 굴곡을 따라 물처럼 흘러내렸던 사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남자는 좀 더 빨리 사과를 찾아 나서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늑골 아래가 쪼개지기라도 할 것처럼 아프다. 오래전에 새겨진 통증. 국화 옆의 향냄새가, 묘연했던 추억의 퇴로를 열어준다. 남자는 무방비로 옛 기억에 잠식당한다. 그는 희끗거리기 시작한 머리에 삼베 모자를 눌러 써보지만 전처럼 감정을 숨기는 일에 능숙하지 않다.
남자는 십 육년 전 사과를 샀던 곳을 찾아,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어머니의 동네를 방문한다. 그러나 주황색 천막 아래 과일들이 풍성했던 예전의 그 가게는 없다. 대신 총각들이 모여 싱싱한 채소를 판다는 식료품점과 유기농 제품 매장, 작은 규모의 슈퍼 등에서 과일을 팔고 있을 뿐이다. 남자는 이 가게, 저 가게를 모두 거쳐 조금씩 사과를 산다. 스무 개쯤 될 것이다.
멀리서 보는 남자의 어머니 집은 예전처럼 위풍당당하지 못하다. 조만간 불합리한 값에 처분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 낙담한 모습이다. 그래도 길은 여전히 가파르고 도도하다. 남자는 십 육년 전의 사과가 행여 눈에 띄지 않을까 하여 주변을 세밀히 관찰한다. 한 알의 사과는 한동안 남자의 집 매끈한 유리창을 두드렸을지 모른다. 한 알의 사과는 혹, 직장에서 유난히 승진이 빨랐던 그의 사무실 책꽂이 속에 숨어 있었을 수도 있다. 남자가 결혼한 여자와 살을 섞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을 때 그 옆을 굴러갔을 수도 있다. 사과는 또, 남자가 유유한 별 하나를 발견했을 때 남자의 구두 옆에서 지친 걸음을 멈추었을 수도 있다. 사과는 빈번히 나타나고 사라짐을 반복하며 하릴없이 남자의 주변을 맴돌았을지 모르겠다. 남자는 창백한 골목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사과를 떠올리며 힘겹게 길을 오른다.
남자는 여자와 자신의 어머니가 함께 서 있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사과를 떨어뜨린다. 탱글탱글하던 과일들이 순식간에 생채기를 내며 길을 따라 굴러간다. 잠시 하나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던 사과들은 이내 천 개의 길로 흩어진다. 그것들은 비루한 일상으로부터 도망이라도 가듯 하나같이 급하다. 황망히, 수줍어하며, 길 아래로 내달리는 사과들이 있다. 작은 골목길을 따라 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사과들도 있다. 골목은 심심치 않게 많고 길은 심오하게 굽어 있다. 남자의 선량함과 무거움, 소심함과 가벼움이 길을 따라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남자는 잠시 화를 낸다. 하지만 자신의 주위에 남아 있지 않은 사과를 오래 원망할 수는 없다. 남자는 낮고 침울하게 여자의 이름을 불러본다.
여자는 인기 없는 영화를 혼자 보고 있다. 위염을 자주 앓는 배를 위해 하루 한 잔으로 제한한 커피를 소중히 마신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여자는 베란다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나뭇잎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다급하게 뛰어나가다가, 꼬리가 잘린 고양이가 화단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 여자는 손톱을 손질하고 화장을 곱게 한 날 서럽게 운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매일, 길을 따라 사라진 사과들을 생각한다. 굴러 내려가는 그 속도를 상상하고, 알 수 없는 길의 모호함을 떠 올리고, 막다른 곳의 냉담함에 부대낀다. 여자는 사과들이 흩어져 있는 자리를 잊지 않기 위해 평생, 애를 쓴다. 그것이 여자가 사과를 먹지 않는 이유다.
여자의 친구들은 사과를 먹지 않는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자식들은 그런 여자를 부끄럽게 여겼다. 남편은 여자가 사과를 먹지 않으므로, 자주 화를 냈다. 여자는 그 모든 것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그녀의 회한 만큼 무거운 것은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위악을 떨든, 합리화로 몸을 숨기든, 체념으로 밥을 먹지 못하든, 여자에게 사과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무엇이었다.
 
남자가 사과를 모으기 위해 사과를 다시 흩어버린 그 날로부터 십 년이 더 지난다. 여자는 알지 못하는 시간이나, 남자에게는 지나치게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사실 여자가 알지 못한다는 가정은 여자의 무의식 너머에 있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자는 길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던 사과가 결국 어디서 다시 모이는지 예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남자와 여자는 이제,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로 둘러싸인 일상이 대수롭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여자는 남자와 그의 어머니가 살던 집에 가보기로 한다. 길 아래에서부터 보였던 남자의 집은 주변 건물이 높아진 탓인지 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큰 길 대신 작은 골목길을 통해 남자의 집까지 올라가기로 한다. 사과를 비롯해 과일들을 파는 가게가 나란히 두 집 있다. 사과처럼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모자를 쓴 마네킹이 서있는 의상실을 지난다. 여자는 모퉁이를 돌아 큰 길이 나오자 다시 반대편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담장 위에 줄줄이 능금 화분들을 올려놓은 몇 채의 집들을 지난다. 단단한 작은 알맹이들이 규모 있게 반짝인다. 다시 큰 길과 연결되어 있는 골목 어귀에 이르자, 사과를 테마로 한 놀이터가 보인다. 여자가 걷는 길 가득 사과향이 아삭하게 퍼져 있다. 여자는 이십 육 년 전, 스물여섯 살 젊은이로 걸어갔을 때보다 더 가슴이 뛴다. 이제 겨우 작은 골목 두 개를 거쳐 왔을 뿐인데 벌써 그녀는, 걸어갈 모든 길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소연하지 않아도, 울거나 절규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런 나이가 있다. 여자는 이 거리 곳곳에 천 개의 길로 갈라져 내려갔던 사과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있음을 알아차린다. 여자는 사과 꽃처럼 하얗게 웃는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의 어머니가 서 있었던 그 자리에 단아한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파란 빛을 연하게 숨긴 빨간 사과들이 당돌하게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는 그 부끄러움 없는 시선 때문에 늙고 거친 피부를 발그레 물들인다. 길을 오래 돌아왔어도 남자와 여자는 너무 늦지 않았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여자는 작은 사과 하나를 따 베어 문다. 영겁을 회귀하여 마침내 여자에게 온 사과는 그리운 맛이 났다.
<끝>
 
 

이유 있는 길

이유 있는 길
심아진
마침내 경수는 소라 탑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친 경찰차들 앞에서 오토바이를 멈출 수 있었다. 경찰들을 보고 이렇게 안도감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최소한 무방비로 혼자 깔려 죽지는 않겠지 싶어 앞뒤 없이 브레이크를 잡아버렸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인지 시위 진압용으로 쓰는 살수차나 벽차 대신 여러 대의 경찰차가 청계광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실수로 자살하는 이의 비명처럼 절박한 바퀴소리를 냈고, 경수는 왼쪽으로 가볍게 튕겨나갔다. 난반사하는 경광등의 불빛과 사이렌, 경찰들의 확성기 소음이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았다. 경수의 오토바이 뒤로 바짝 따라왔던 그것은 이제 거대한 회오리사탕처럼 둘둘 말린 채 정지해 있었다. 다행히, 정지한 것이었다.
경찰들은 인재라고도 자연 재해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 앞에 잔뜩 진장한 모습이었다. 그 중 두 명이 총을 겨누며 경수에게 다가와 수갑을 채웠다.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경수와 거대한 덩어리를 찍느라 야단이었다. 경수는 수갑을 찰 이유가 없다는 항변도 하지 못한 채, 긴 구간 자신과 함께 달려온 ‘길 덩어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파헤쳐진 청계천변의 길이 두꺼운 카펫 말린 모양으로 쓰러진 오토바이 뒤에 바투 붙어 있었다.
 
경수의 사건은 곧 휴대폰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남대문경찰서와 종로경찰서, 혜화경찰서 담당자들의 합동 수사가 진행되었다. 사건이 시작된 지점은 정확히 경수가 청계천로에 진입한 고산자교 부근이다. 일요일 오후 아홉 시경 경수의 오토바이가 달려가는 길을 따라, 청계천변의 차량 통행로가 깨지면서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수는 오토바이가 왕십리 부근을 지날 즈음에야 자신의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알게 된 연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어요. 제 오토바이 마후라 소리가 장난 아니거든요.”
경수는 불 꺼진 상가 쪽 인도에서 아이들인지 어른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몇몇 사람이 롤러 블레이드 타는 모습을 보았다. 보드나 블레이드를 타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도로로 튀어나오는 수가 종종 있었기에, 속도를 늦추었다. 그런데 속도를 늦추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본 순간, 그는 거대한 맷돌 덩어리 같은 것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바짝 붙어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경수는 그 돌덩어리가 자신을 덮치려 한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어쩌고 할 경황이 없었다. 경수는 그대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그 묵직한 것이 계속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덩어리의 속도가 자신의 속도에 비례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동대문을 거의 다 지나갈 때쯤이었다. 경수는 오토바이를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는 바로 그 순간 점점 거대해진 그것이 자신을 납작하게 깔아뭉갤 것만 같아서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그 시간에 나 말고는 다른 차나 오토바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예요.”
경수는 아직도 온 몸이 후들거린다며 그 때 일을 회상했다. 경찰들이 조사해보니 사실이었다. 일요일 밤이라 워낙 통행량 자체가 없는 때이기도 했지만 사건이 발생한 약 15분가량의 시간 동안 동에서 서로 가는 청계천로에는 차가 전혀 없었다. 물론 반대편 쪽에는 차들이 다니고 있었고 보행자 도로에 드문드문 사람들도 있었다. 경찰들이 출동하게 된 것도 건너편 사람들의 신고 때문이었다. 경찰차는 중간에 경수의 경로에 진입하려다 몇 번을 놓치고 겨우 세종대로쪽 입구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게 된 것이었다. 경수는 자신 역시 신고를 위해 휴대폰을 꺼냈으나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전화기를 놓치고 말았다고 진술했다. 경찰들은 수족관이 즐비한 상가 건물 근처에서 깨진 휴대폰 하나를 발견하였다. 경수가 진술한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고서 경수는 더욱 당혹감을 느꼈다. 용기를 내서 멈춰볼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이 그의 오토바이는 휴일 통행금지를 표시하는 플라스틱 삼각대를 뚫고 지나갔다. 광통교 부근의 청계천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땅이 찢어지면서 튄 돌멩이 등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사람들도 많았다. 다행히 둘둘 말린 덩어리는 착실하게 경수의 오토바이만을 따라 간 것인지, 직선 도로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왜 중간에 옆길로 새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경수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만약 나래교나 수표교 따위를 넘는데 그 놈이 거기도 따라왔다면 무게 때문에 다리가 무너졌을 걸요? 몇 번 그럴까 생각은 했지만 반대편은 다니는 차들도 있었고, 암튼 그놈은 제 뒤에 너무 바짝 붙어 있었다니까요.”
경수의 말은 타당성이 있었다. 그것의 직경은 거의 오십 미터에 육박하고 있었고 무게를 상상할 수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전례 없는 사건 때문에 나라 전체가 들썩였다. 경찰들은 우선 경수에게 몇 가지 경범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어떤 교통 카메라에도 경수가 신호를 위반하거나 규정 속도를 초과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게다가 경수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달렸다 하더라도 당시의 응급상황을 고려했을 때 큰 죄를 부과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 땅이 깨지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 오토바이 머플러의 구조 변경 역시, 소음 측정기 결과 80 데시벨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처벌 대상이 되지 않았다. ‘부주의’ 어쩌고로 시작된 질문 역시, 누가 달리면서 매번 뒤를 돌아다보느냐는 경수의 조리 있는 반문에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서울의 자랑이며 시민들의 위안이라는 청계천로의 한쪽 길은 도륙당한 고기의 살처럼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과일 껍질처럼 땅이 벗겨질 수 있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땅 밑에 묻혀 있던 철근이며 배수관로가 훤히 내비쳤다. 마장동 부근에서 광화문까지 연결된 도로가 전면 통제되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반대편 차로는 물론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청계천변의 다리들은 모두 차단되었다. 차들이 해당 구간을 경유할 수 없게 되자 서울 전체의 교통 혼잡은 예상을 초월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근 상인들과 시민들의 불만의 소리가 끓어올랐다. 건설교통부와 국토해양부, 그리고 각종 과학 단체에서 땅덩어리 혹은 돌덩어리로 불리는 그것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땅이 두루루 말렸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어떤 새로운 정황도 포착할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일부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기다려 마지않았던 종말의 도래라 짐작했음인지 개탄을 금치 않으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인간성을 상실하며 개발로만 치닫는 현 작태를 하늘이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환경 단체도 만만치 않게 깃발을 높이 세웠다. 생태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미관과 전시 효과만을 고려한 정부의 시도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녹색 옷을 입고 덩어리가 멈춘 곳에 모여들어 집회를 열었다. 거대한 달팽이 껍질처럼 말려 있는 도로를 보고 예술의 초극을 꿈꾸는 젊은 집단이 단체로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청계천의 역사를 연구하는 단체들이 숨은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며 새로운 조사 기관을 위한 보조금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무속 연합에서는 광통교에 떠도는 신덕왕후의 원혼이 들고 일어난 것이라며 전 국민이 참여해 큰굿을 벌여야 한다는 내용의 연판장을 돌렸다.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은 넘쳐났다.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개인과 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침내 정치권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연관 있는 부서 장관들의 개인적 비리가 공개되었고 여당과 야당간 책임 논란이 일었다. 어떤 절차와 방법에 의해서든 누군가는 사태를 짊어져야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희생양이 될 만큼 약하고 어리숙한 사람은 드물었다.
모종의 힘들이 경수를 지목하였다.
경수는 일단 무죄방면 되었지만 취조와 탐문을 위해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청계천과 그의 이름 석 자가 인터넷에서 검색어 순위 1위로 올랐다.
나이 28세. 거주지 마장동. 동대문 신평화시장 마네킹 도매업체 직원. 고향……. 취미……. 애정 관계…….
경수와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증언이 언론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소개 되었다. 동대문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서점에 가기를 좋아했다는 점이 알려지자마자 비의적 음모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댓글을 난사했다. “그에게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최종 결론이었다. 경수가 사는 마장동 월세집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우시장으로 유명한 그 동네에는 소의 원한이 사라지지 않는 몇 군데의 거점이 있는데, 경수가 세 들어 사는 집이 바로 그 거점 세 곳이 합쳐지는 지점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의 고향에서 내려오는 ‘말하는 숲’ 전설을 인용하고 그럴 듯한 괴담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가 언젠가 버들 다리 위에 있는 전태일 동상을 어루만진 적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다른 사람은 그 사실로부터 종북주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경수가 근무하던 마네킹 업체는 몰려든 기자들로 몸살을 앓았다. 그 와중에 전위예술을 한다는 미인 예술가는 벌거벗은 존재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며 마네킹으로 변장해 청계광장에 서있기도 하였다.
경수의 일상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그는 동대문 시장의 여러 가게들을 전전하며 점원으로 일했다. 신발 도매 상가에 있기도 하였고, 공구상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전문 기술은 없었으며 주로 판매와 배달 업무를 하였고 ‘다방’이라는 간판이 달린 곳에 가끔 들르곤 했다. 열여덟에 고향을 떠난 뒤 십여 년, 마장동 일대의 월세방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지만 납입금 이백만원이 채 되지 않는 주택 통장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시장에서 알게 된 동료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날린 일도 있고, 가장 오래 일했던 타일 가게에서는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걸어온 길에 특별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다는 게 이상할 뿐일 정도로 경수의 생활은 평범했다. 하지만 경수에 대한 조사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거대한 덩어리는 여전히 청계광장에서 꼼짝을 않고 있었다. 즉시 그것을 치워야 한다는 의견과 역사적 사건의 기념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팽팽히 맞물려 덩어리의 거취는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교통은 여전히 엉망이었으며 일대를 오가야하는 많은 시민들의 불평은 높아가기만 하였다. 정치권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누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지에 대한 홍보성 제작물들이 사이버 망을 떠돌았다. 모두의 분노가 응집되어가고 있었다.
경수가 가장 의심을 받는 부분은 왜 하필 그 시간에 책을 사기 위해 청계천변을 이용해 교보문고까지 갈 생각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경수는 명쾌하게 “교보에는 책이 많잖아요”라고 대답했지만, 그렇게 간단명료한 동기는 쉽게 용인되지 않았다. 경수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허무맹랑한 자 하나가, 그 동안 경수가 산 책의 목록을 내려 필요한 몇 개의 단어들을 발췌하기 시작하였다. 열망, 동경, 바람, 제 자리, 모순, 새로운, 기회, 영원……. 여러 차례의 재판이 열렸다. 아무런 범법 행위도 찾을 수 없다는 처음의 판결과 달리 경수는 형법 제 87조 내란죄와 115조 소요죄 등에 의해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정을 받았다. 걱정 말라며 싸워보자던 국선 변호사는 판결 직후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경수는 창살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책이 많잖아요”라는 말 외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서 사태가 이리 된 것은 아닐까 고민해보았다. 어쩌면 그가 서점에 너무 많이 들락거린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수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서점의 여직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기로 하였다. 이유 없이 그녀의 사진이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경수는 서럽고 암울한 마음이 되었다. 스물여덟 해를 멋지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사람 아닌 자신에게, 왜 하필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덩어리는 어째서 할리 데이빗슨 같은 오토바이를 따라가지 않은 것일까? 왜 한강이 아닌 청계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청계천변에서 한가로이 데이트를 해 본 적도 없는 자신이 어찌해서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경수는 그 밤을 떠올려보았다. 이상한 길 덩이에 쫓기며 청계천로를 달리다가 문득 건너편에 뜬 초승달을 본 기억이 났다. 지치고 비루한 일상들을 숨긴 불 꺼진 건물 위로 번뜩거리는 달이 떠 있었다. 경황없었던 그 순간에 어째서 그것이 눈에 들어왔을까? 그 가느다란 달은 마치 지금 경수가 있는 이 차가운 바닥처럼 생소하고 매정하게 느껴졌었다.
 
경수가 옥에 갇혀 눈썹 같은 달을 떠올린 바로 그 순간, 서울 시내, 전국 곳곳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도로가 깨지면서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며 환자를 수송하는 구급차, 음악을 크게 튼 승용차나 피자 배달 오토바이 뒤로 길이 깨지며 말려왔다. 마치 파를 채칼로 길게 썰 때 껍질이 도르르 말리는 것처럼 길들이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수가 그 날 밤 잠시 청계천로를 달렸던 딱 그 시간 동안, 전국의 수많은 길들이 동그랗게 말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경수의 오토바이 단 한 대였을 때 그렇게도 말이 많았던, 그리고 어떻게든 책임을 덮어씌우고야 말았던 그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 혹은 운전하고 있는 길 또한 언제 동그랗게 말려버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돌돌 말린 길덩어리들은 사람들의 동요나 불안이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잠잠했다.
경수는 다시 무죄방면 되었다.

신의 길

신의 길
심아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1-2)
 
천지를 창조하기 전, 신은 흑암, 혼돈, 공허라는 세 벗과 함께 있었다. 신과 벗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란으로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고요한 산책을 하곤 했다. 벗들은 신의 창조에 대해 근심이 많았다.
 
한 점의 얼룩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검은 흑암이 신의 계획을 통곡으로 만류했다.
“도대체 왜 자청해서 일을 벌이시려는 거죠? 저는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데…….”
흑암은 신이 무엇을 구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과 정확히 반대되면서 동류인 짝, 빛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흑암은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했다.
“빛은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말 거여요. 숨겨져 있던 고결한 비밀을 티끌 하나까지도 찾아내려 하겠죠.”
신은 말없이 흑암을 어루만져 주었다. 흑암은 신이 구상하는 처음은 알 수 있었지만 그 끝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역시 자신처럼 괴로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혼돈이 축 쳐져 있는 흑암을 등 떠밀며 신께로 나아왔다. 그의 주변에서 소란한 파장이 일었고 순식간에 동요와 불안이 솟아났다.
“전 당신이 하려는 일에 찬성해요. 우리 모두는 당신이 만든 만물에 깃들어 그 세상이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 볼 수 있겠죠.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혼돈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는 불의와 정의, 선의와 악의, 기쁨과 슬픔, 진실과 거짓 등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형태의 귀퉁이 한 부분, 의미의 작은 토씨 하나만 틀어도 그것들은 쉽게 변질되어 버릴 터였다.
하지만 시니컬했던 혼돈은 자신이 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는 의기양양하던 태도를 버리고 갑자기 의기소침해져서는 걱정스레 신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계획을 접어버리세요. 우리들로 이미 완벽하지 않나요?”
신은 이번에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혼돈은 그의 눈에 어린 단호함을 읽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은 종류가 다른 완벽함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의 고집은 곧 그의 본질이므로 아무도 꺾을 수가 없다. 혼돈은 가학과 피학이 섞인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신은 이제 공허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그가 차분하고 끈질기다는 것을 알기에 신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마침내 끝도 시작도 없는 길에서부터 걸어왔다는 듯 피곤해 보이는 공허가 신을 불렀다.
“왜 저희들을 모두 없애버리시고 그것들을 만드시지 않는 겁니까?”
신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공허는 그 질문 자체가 이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다시 물었다.
“흑암과 혼돈이라도 떼어내 버리세요. 저만 있어도 충분히 새로운 세상을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공허는 ‘아니면 흑암과 혼돈을 두고 저만 없애시든지요.’라고 말하려다, 신이 이미 자신의 대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입을 닫았다. 처연하고 건조한 부동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신이 자신의 일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세 벗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에는 세 벗과 완벽히 다르면서도 다른 차원에서 동일한, 놀라운 세상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신감이 흘렀다.
 
그리고 아둔한 세월이 흘렀다. 어느 면에서 적절한 세월이기도 했다. 신은 이제 자신이 만든 세계와 세계를 넘어서는 다른 곳을 두루 오가고 있었다. 예상대로 흑암과 혼돈과 공허는 뜨거운 커피에 녹아드는 설탕처럼 세상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명암이 조금 변했을 뿐인 흑암과 형태에 약간의 변화만 가해진 혼돈, 그리고 순수하게 압축되었을 뿐인 공허가 가끔씩 신의 길에 나타나곤 했다.
“조금 하얘진 것 같기도 해요.”
흑암이 말했다.
“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혼돈이 말했다.
“창조 전이나 후나 다를 게 뭐여요?”
공허가 말했다.
신은 자신의 본질인 고집을 꺾지 않으며 다만 그윽한 미소로 그들을 응대할 뿐이었다.

그저 우연일 뿐이겠는가?

그저 우연일 뿐이겠는가?
심아진
 
지독한 냄새였고 견디기 힘든 추위였다. 또한 온몸이 진딧물의 수액처럼 묽게 녹아내릴 듯한 더위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무튀튀하고 끈적거리는 늪 속에서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의지로 20개월을 버텼다. 아무도 우리들이 살아남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우리들이 이런 곳에 버려진 것인지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누군가를 알지도 못하였거니와 우리에겐 심지어 말을 할 수 있는 입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은 이룰 수 없으니 가지는 게 분명하다고 믿고 체념할 무렵, 희망이 보였다. 탄력이 강한 무언가가 우리 모두를 삼켰고,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놈의 장 속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양분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도록 몸에 붙은 섬모를 제거하고 새로운 피부를 만들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우리 모두를 이끌고 있었다.
 
겨울잠에서 깬 후 오랜만에 포식을 한 달팽이는 과식의 후유증을 톡톡히 겪었다. 똥에 양분 외의 무언가가 더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내내 속이 더부룩하였고,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이전보다 더 천천히 먹고 더 느리게 움직였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곳은 원래 있던 곳보다는 확실히 나은 곳이었다. 어두웠기 때문에 더 이상 불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으며, 기분 좋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습하고 따뜻했다. 작은 행운에 너그러워진 우리는 스스로를 혹은 형제를 해치며 퇴행하는 대신 수차례에 걸쳐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났다. 미라키듐, 스포로시스트, 레디아, 세르카리아…. 복잡한 이름들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름들이 모두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서 쏟아진 무수한 우리 자신들을 보며 혼돈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즉 나이기도 한 우리, 그리고 우리이기도 한 나는 또 누구인가? 이관규천以管窺天. 좁은 소견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수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불편함을 주면서도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표면적으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긴 꼬리였다. 그 누구도 꼬리의 쓰임새를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일단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감사한 보람이 있게도 그 꼬리는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부작침磨斧作針. 우리는 빈약한 꼬리를 휘둘러 뚫릴 것 같지 않은 놈의 장에 딸린 샘을 지나 마침내 허파로까지 이동하였다. 형제 몇이 죽어 나가는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으나, 결국 해냈다. 희망이 더 이상 희망으로만 남지 않았던 상황, 곧 바라던 바가 이루어졌던 상황을 이미 한 번 경험한 우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증세를 넉 달이나 겪은 후 달팽이는 마침내 심한 호흡 곤란을 느끼며 가래를 뱉어냈다. 자신을 괴롭히던 무언가가 간신히 떨어져나간 것 같았다. 기운이 빠진 달팽이는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 한 채, 죽은 듯 늘어져 있었다. 뱉어낸 가래에서 수많은 작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눈이 나쁜 달팽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달팽이는 그저 속이 편해져서 다행이라 여기며, 알고 싶지도 않은 세상을 내버려둔 채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외부 공기는 시원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다시 이전보다 더 좁고 갑갑한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십밖에 안 되는 적은 무리로 나뉜 우리는 잠시 불안감을 느꼈지만, 어쨌거나 가야할 곳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를 이끄는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적절한 체념이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개미는 자신도 모르게 끈적거리는 것을 후루룩 들이마셨다. 하얀 거품에서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감칠맛이 났다. 상부에 보고하는 것도 잊은 채, 개미는 생소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몸 전체가 양분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엄청난 단백질 공급원인 달팽이의 냄새가 입안에 가득했다. 달팽이를 통째로 먹고 둥지에도 가져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멀리 있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습성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살 만 했다.
 
이제 오십이나 되는 나머지 형제들의 생존은 모두 내게 달렸다. 형제들은 더 이상 나를 불신하지 않았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나 스스로 나를 신뢰하여 생긴 결과였다. 형제들은 무사히 새로운 곳으로 옮겨온 것을 모두 내 덕으로 돌렸다. 전 지휘권을 내게 넘기고는 그간 피폐해진 건강 상태를 돌보기 위해 자신들에게 적절한 공간들을 찾아 나섰다. 최소 2개월. 그 안에 우리가 자리 잡은 이 새로운 몸뚱이를 어떻게든 길들여야 했다.
하지만 녀석을 길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간 겪었던 냄새도 비좁음도 지금 발휘해야 할 인내에 견줄만한 것이 못 되었다. 나는 녀석과 내가 거의 하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충분히 먹지 못한 형제들이 힘을 잃어갈수록 나는 더욱 초조해졌다. 지쳐갔기 때문에 의구심도 깊어갔다. 우리는 왜 또 다시 다른 어떤 곳으로 가야 하는가? 더 나은, 더 풍부한 곳으로 가면 이 굶주림이 끝나고 이 미칠 듯한 갈증이 끝이 날까? 그리고 마침내 그 어떤 애면글면한 조바심 없이 완벽하게 평화를 누리게 될까?
 
보름달이 동그랗게 뜬 밤, 겁도 없이 한 마리의 개미가 대열을 이탈했다. 그는 몽유병에라도 걸린 듯,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싱싱하고 보드라운 풀 위로 기어 올라갔다. 달과 가까이 갈수록 위험에 노출 될 확률이 커지지만 개미는 이미 무아지경에 이른 듯하다. 마침내 그의 단단한 집게턱이 풀을 꽉 물었다. 그대로 동상이 되어 버린 듯, 개미는 동이 트기까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오늘도 간신히 녀석을 조종해 제 무리로 돌려보냈다.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 발각되면 녀석은 사지가 찢기는 참형을 당해야 할지도 몰랐다. 또한 한낮의 태양 아래서는 녀석만 타 죽는 게 아니라 우리까지 녹아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서둘렀는데도 녀석은 답답하게 움직였다. 그를 덜 미치게 해서도 안 되지만 또 완전히 미치게 만들어서도 안 되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그의 일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일은 중요했다.
 
밤이 되자 개미는 다시 한 번 대열을 이탈해 풀잎 위로 기어올랐다. 근처에 있던 개미가 잠시 이상하게 여기는 듯 했으나, 다행히 그를 주시하지는 않았다. 별과 달과 바람이 속삭이는 시간들이 더디게 흘렀다. 개미는 어찌하여 자신이 온 몸이 경직된 상태로 풀끝에 매달려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그다지 기억에 남지도 않는 것처럼 지금의 상황도 일어나는 내내 모호하기만 했다. 풀에 매달려 있는 것이 과연 자신이 맞는 것인지, 자신의 단단한 입이 정말 풀을 물고 있기는 한 것인지, 모든 것이 아련했다.
 
호미난방虎尾難放. 잡았던 범의 꼬리를 놓을 수는 없었다. 결국 성공을 위해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침 해가 뜨고도 한참을 더 녀석을 장악하고 있었다. 녀석과 마찬가지로 아둔한 녀석의 진영에서는 대원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아직 모르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여느 때처럼 대열을 갖추고 행군을 준비했다. 해는 점점 뜨거워졌다. 기대했던 게 큰 만큼 원망도 큰 형제들이 내게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배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녀석의 머리에 자리를 잡은 내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한 형제가 기어오기 시작했다. 형제는 녀석을 조종해 잠깐의 뜨거움이나마 면하는 게 상책이라고 주장했다. 교각살우矯角殺牛.내 계획이 전부를 몰살시키고 말 거라며, 그는 나를 비웃었다. 그러나 나는 위엄을 잃지 않았다. 나를 따르라. 그것은 사실 나 스스로 확신이 서서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다. 달리 누구를 믿겠는가? 사실 나는 벼랑 끝에 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형제의 말을 받아들이면 나는 내 지휘권을 박탈당함과 동시에 배고픈 형제들에게 잡아먹히고 말 터였다. 하지만 이미 내게 도전장을 던진 그에게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녀석과 내가 서로를 맞잡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사이후이死而後已의 태세로 결전을 앞둔 찰나, 우리 모두는 어둡고 거대한 통로로 빨려 들고 말았다.
 
신중하지 못한 젊은 양은 이른 아침부터 풀을 뜯어 먹는 우를 범했다. 그 풀에 꽉 달라붙어 있는 작은 개미를 보지도 못 한 채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제 자신이 너무 경솔하게 또 성급히 움직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맛있는 풀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 잠에서 깨지 않은 다른 양들이 오기 전에 보드랍고 맛있는 풀을 먼저 먹으려는 양의 입은 바빴다. 조기조포충 早起鳥捕蟲! 그러나 일찍 일어나는 새는 더 일찍 일어나는 사냥꾼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양은 아직 그 사실을 알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미끌거리고 아늑한 그곳은 우리 모두에게 친숙했다. 우리는 험난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축배를 들었다. 배불리 음식을 먹고, 취하고 춤을 추었다. 마침내 우리는 나뭇잎 모양으로 변한 몸을 음란하게 흔들어대며 우리 자신들과의 교미를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자웅동체였다.
번식에서 오는 충만한 행복감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납작하게 눌려 죽을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고 살아남은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모종의 우울함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충만감과 결핍감을 동시에 느끼며 알을 낳는 순간에, 우리는 여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았으나 완전히 우리와 똑같이 생긴 어떤 이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는, 설령 미소를 지을 입이나 입가의 근육이 없다 하더라도 분명 웃고 있었다. 동시에 그가 물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일 뿐이겠는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우리를 낳았고, 여태 그곳을 떠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우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랬다. 학명 파스키올라 헤파티카Fasciola hepatica. 우리의 이름은 간충肝蟲이었다. 나갈 준비를 마친 이만 여 개의 알들이 우리들의 몸에서 부글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것을 겪고 다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또 하나의 자신인 우리를 만날 수도 있을 그 알들.
지금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그 알들이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만이 중요했다. 우리는 그 어떤 시간도 장소도 사건도 기억할 수 없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쏟을 뿐이었다. 생이여! 알들은 내게 충성스럽게 손을 흔들며 빠르게 떨어져나갔다. 우리는 눈물을 흘릴 눈도 없고 눈물샘도 없었지만 어쨌든 울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무의미한 우연일 뿐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끝> 원고지 27매

감자와 나

감자와 나
심아진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 말기 바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총각인지, 노처녀인지,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감자볶음 요리를 하기로 했다. ‘감자볶음’을 검색하고 찾은 인터넷 블로그에서 남편이 어쩌고 아이가 어쩌고 하는 설명이 한참 이어지다가 준비물이 나왔다.
감자 2개, 양파 반 개, 당근 반 개, 양배추 약간, 후추 약간, 양념간장 2, 참기름 1, 통깨 1
어이가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재료들이 아닌가 말이다. 감자볶음에 양파는 왜 들어가며 당근에 양배추까지? 게다가 크기도 다른 채소를 놓고 반 개는 뭐며 약간은 또 뭐란 말인가. 아,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 어디까지나 나 역시 내 식대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다. 그냥 내 기준에서 황당했다는 얘기다.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성격이 있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트라우마 같은 게 있게 마련이다. 가령 당신은 내가 “부등식 (x+y-4)(2x-y+3)≥0을 만족시키는 실수 x, y에 대하여 x²+y²의 최솟값은?”에 대해 이건 기본도 안 되는 문제라고 말했을 때, 황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금방 풀었다고 하더라도 제발 너무 쉽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숫자 놀음은 우리의 본질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요리를 해 보고자 한 것뿐이다. 거창하지 않은 소박한 감자 요리 말이다.
검색창에 다시 한 번 감자볶음을 입력했다. 화면에 떠 있는 사진 중 감자의 허여멀건 한 색이 두드러진 것으로 골랐다. 그러니까 양배추나 당근 같은 것은 없는 것으로. 내가 먹겠다는 것은 어쨌든 감자니까 말이다. 나는 곧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알았다. 내가 먹으려는 음식은 ‘감자볶음’이 아니라 정확히 ‘감자채볶음’이었다. 양배추나 당근이 재료에 없는 그 블로그에서는 그렇게 명명하고 있었다. 그렇다. 처음의 실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몰라서였음에 틀림없다. 감자와 감자채의 유의미한 차이. 나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일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일이 있다. 제발 감자볶음이나 감자채볶음이나 같은 거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 어떤 현상은 뭉개버리고 모르는 체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나는 살짝 이 부분을 넘어가고자 하니, 제발, 눈감아주기 바란다. 아무튼 나는 성급하게 마우스의 스크롤바를 내렸다. 이 요리법을 올려놓은 사람 역시 여름이니 매미니 하는 얘기를 한참 떠들다가 겨우 준비물을 내놓았다.
감자2, 양파1/2, 대파1/2, 굵은 소금, 포도씨유, 소금, 후추, 참기름, 통깨
역시 만만치 않은 재료다. 나는 단 두 번의 검색으로 ‘간단한’ 감자채볶음 같은 것은 깨끗이 포기하기로 했다. 오래 고집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는 것은 결국 감자도 뭣도 없는 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채소의 크기 따위에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고, 여타 다른 식재료에 관해서도 순종하기로 했다. 내게 얼마간의 융통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나는 여러 크기의 감자가 담겨 있는 바구니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겠지만, 결국 현명하게 제일 큰 감자와 제일 작은 감자의 딱 중간 정도 되는 크기의 감자를 고를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잘 없다는 이 유도리ゅとり. 나는 순순히 양파니 대파니 하는 것들도 결국 감자채볶음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아이에게 실험해 보라. 네 대를 맞을래, 두 대를 맞을래 하고 물어보면, 사는 게 생각보다 거칠다는 것을 인정하는 평범한 아이라면 반드시 두 대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당근과 양배추가 빠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두 대쯤은 기꺼이 맞아줄 수 있다.
게다가 양파나 대파나 둘 다 파가 아닌가. 나는 작은 위안에도 만족하며 장을 보았다. 실제로 나는 양파 한 망 값으로 삼천 육백 원을, 대파 한 묶음 값으로 이천 팔백 원을 지불했지만, 그냥 묶어서 파 값으로 육천 사백 원을 지불했다고 생각했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심플한 것들이 사람을 얼마나 위로하는가 말이다. 파 육천 사백 원!
그러나 그 다음 장벽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천일염, 구은 소금, 맛소금, 심지어 허브맛 솔트까지 집에 있었지만,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은 ‘굵은 소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슈퍼마켓의 소금 진열대 앞에서 허리를 폈다 굽혔다를 반복했다. 소금의 화학 기호 NaCl. 이온 결합시 음이온의 크기와 양이온의 크기로 결정의 모양이 정해지는데, Na+이온을 향해 Cl-이온이 소위 xyz 세 방향에서 붙어 있어야 안정된 형태를 띠게 된다. 결정이 굵어지려면 결정들이 모이는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져야 하기 때문에, 저온에서 오래 끓여진 것, 즉 염전에서 구한 NaCl이 바로 ‘굵은 소금’이 되는 것이다. 찾았다. 일 킬로그램짜리 배추절임용 소금.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킬로그램이나 오 킬로그램을 사야했다면 정말 갈등했을 것이다. 이러면서까지 감자채볶음 따위를 먹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이제 슬슬 지겨워진다고 말하지 말라. 뭐니뭐니해도 가장 괴로운 것은 나다.
내게는 아직도 포도씨유와 후추, 참기름, 통깨라는 거대한 관문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건너뛰기로 하자. 당신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말하기도 싫을 정도로 지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쇼핑백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쓰레기봉투에 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점원과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진이 빠져 돌아왔다는 것만 말해두고자 한다. 사실 나는 오랜 사유와 번뇌의 시간 끝에 고른 음식 재료들을 쓰레기 취급하기 싫어서 계속 아니오, 라는 말을 반복한 죄밖에 없다. 그 쓰레기봉투가 그 쓰레기봉투인지를 몰랐을 뿐이다. 내가 점원을 무시했다거나 놀리려고 그런 게 정말 아니란 말이다.
그러므로 요리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빗살무늬토기부터 굽기 시작해 단번에 인류의 요리 역사 전체를 경험한 사람처럼 피로해졌다. 뼈가 흐물거리고, 손이 떨려 이러다 정말 암이라도 걸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필 암이 떠오른 것은 감자가 항암 효과에 탁월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항암 효과를 가졌다는 성분인 알파카코닌과 알파솔라닌은 감자의 껍질과 싹에 많이 들어 있는데, 조리시 거의 제거되어버린다. 그럼 감자를 껍질 째 삶아 먹든지, 생으로 갈아 먹으면 고생도 하지 않고 좋지 않았겠냐고? 지당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비이성이나 억지라고만은 할 수 없는 성향 혹은 취향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모서리가 둥근 지갑이나 노트를 사야만 만족하고, 누군가는 꼭 문을 등지고 앉아야만 마음이 편하다. 앞머리를 내리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이 있고, 단추나 지퍼를 모두 잠그면 답답해서 미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조건 감자채볶음이 먹고 싶다. 그러니 관심과의 구분이 몹시 애매한 간섭이라면 거두어 주시라.
아무튼 나는 감자를 내 식대로 먹기 위해 꺾이려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조리대에 섰다. 먼저 다루기 쉬운 과도로 감자를 돌려 깎았다. 푸르스름한 독은 보이지 않았는데, 보였더라면 얼마만큼 도려내야 인체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를 가늠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푸른 싹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조심해야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때문에 약간 서운해졌다. 그렇다니까. 인간은 아주 약간이라면, 스트레스를 반기기도 한단 말이다. 무병장수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 은근히 비운의 주인공처럼 요절하기를 바라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맞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로 누가 좀 때려줬으면 하고 기대를 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란 말이다. 당신은 아니라고? 그래, 그래. 성향이니 취향 얘기를 한 것은 나니까, 이쯤에서 넘어가는 게 좋겠다. 요리를 계속 하자.
나는 인터넷에서 시키는 대로 감자를 채 썰었다. 굵게? 가늘게? 그냥 내 성향과 취향대로 썰었다. 그리고 잘 썰다가 내 손톱도 하나 둘 같이 썰었고, 급기야 살도 조금 썰었다. 물론 엄청나게 아팠다. 하얀 감자가 빨갛게 변할 만큼은 아니었고 그저 연한 살구색이 될 정도로 피가 났지만, 아무튼 꽤 따끔거렸다. 검지의 손톱 아랫부분. 한참 지혈을 한 후, 나는 도대체 감자를 어떻게 쥐고 칼을 어떻게 썼길래 베인 것인지를 알기 위해 동작을 재현해보았다. 마치 범죄자가 범죄 현장에 다시 가는 것처럼, 나는 조금 전의 내 행동을 흉내 내보았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본능 중 하나다. 물론 일부러 확대해석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멍청한 짓을 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단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째서 납득할 수 없는 부위가 칼에 밸 수 있었던 것인지를. 그것은 도저히 그럴 수 없으리라 여겼던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처가 난 부위는 결코 상처가 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맙소사! 이런 때 드는 게 자괴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처럼 잘 잊는 유전자의 힘을 빌어 재빨리 상황을 정리하였다. 우선 밴드를 손가락에 단단히 감았다. 그리고 썰다 만 감자를 왼손에, 칼은 다시 오른손에. 나는 마음을 다스리며 칼질을 겨우 마치고, 안내문에서 시키는 대로 감자를 물에 담갔다. 녹물을 빼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다음으로 양파와 대파 썰기. 예상했겠지만 쉽지 않았다. 맙소사. 내가 흘린 눈물의 양을 봤다면 틀림없이 내가 양파와 파의 죽음을 애도해서 그렇게 울었다고 할 것이다. 나는 눈이 벌게진 채, 주방에서 가능한 먼 곳으로 이동해 티슈로 눈물을 닦아냈다. 사는 게 왜 이런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눈물을 쏟고 나니 사는 게 왜 이런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울다 지친 인형처럼 그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물에 잠겨 있는 감자가 나를 불렀다. 야!
팬에 포도씨유를 두른 후, 물을 빼고 체에 건진 감자를 쏟아 부었다. 지지직. 소리만 요란한 게 아니었다. 기름과 물이 서로를 경멸하며 튀어 오르는 힘이 엄청났다. 뜨거운 기름에 물이 닿으면 난리가 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도 본 바가 있는 사람인데, 왜 몰랐겠는가? 그러나 나는 너무 지쳐있었고 지나치게 감자에 집중했기 때문에, 체에 걸렀다 하더라도 남아 있을 물을 간과했던 것이다. 눈두덩과 광대뼈 부근이 따끔거렸다. 피부가 살짝 벗겨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따끔거리는 부위를 비볐다. 곧 실수를 깨달았지만 양파와 대파의 유황 성분이 더 빠르게 손에서 눈으로 옮겨간 뒤였다. 눈이 아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앞이 흐릿한 가운데 간신히 벽을 더듬어 욕실로 갔다.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눈을 헹구고, 다시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세상이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내게 왜 교훈 같은 것을 주려는지 왜 시험 따위가 필요 없는 나를 자꾸 시험에 들게 하는지 세상에게 따져 물으면서, 나는 비틀비틀 욕실을 나왔다. 하지만 내가 겪어야 할 악운이 아직도 한 줄 더 하늘에 쓰여 있었던 모양이다. 중불로 줄여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을 감자가 센불에서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림에 지쳐 흘렸을 감자의 눈물이 매캐한 연기로 기화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그래,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감자채볶음을 먹지 못한 인간의 기력이라는 게 결국 이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고지 30매. 마지막으로 질문하시라. 그 후로 감자채볶음을 다시는 하지 않았느냐고? 당연히 하지 않았다, 라고 답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러지 못했다. 똑똑한 인간이라면 깨끗이 포기했겠지만, 똑똑하지 않은 나는 미련함과 도전정신을 쉽게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블로그 찾는 것은 두 번 만에 쉽게 포기하더니, 감자채볶음은 왜 그러지 못했냐고? 똑똑하지 못해서 그랬다니까 그러네. 그냥 상황 따라 쉽게 변하고 한없이 모순된 게 인간이라고 해 두자. 뭐?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그래, 그래. 알았다. 개인의 특성이 군집의 특성을 능가한다는데 언제나 동의하는 나다.
사실 이론상으로 남은 변수랬자 소금의 문제나 마늘의 문제 등 몇 개가 되지 않았다. 모든 재료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수와 모든 재료의 수를 곱하면, 아니 숫자 놀음은 하지 않기로 했지. 어쨌든 ‘그까짓 감자채볶음’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시……. 알고 싶지 않다고? 나 역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이야기는 끝을 내야 하니까 말이다. 이런 경우에 미국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던데. 블라블라.
블라블라, 모두 실패했다. 나는 결국 감자채볶음을 포기했다. 여섯 번째인가 일곱 번째인가 쯤에 참다못한 감자가 채 썰리던 도마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말했던 것이다.
이 감자만도 못한 인간아!
순간 나는 왜 썰린 감자채가 아니라 반쯤 남아 있던 감자 덩어리가 그렇게 말을 한 것일까 묻고 싶었다. 감자채들이 입을 모으는 것보다 묵직한 덩어리가 한 마디 던지는 게 나아서? 아니면 감자채는 감자의 본질이 아니라서?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나는 하얗게 질린 감자의 얼굴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감자에게 감자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 역시 원해서 이렇게 생겨먹은 건 아니다. 감자에게 어찌할 수 없는 삶이 있는 것처럼 내게도 어찌할 수 없는 삶이 있을 뿐인 것이다. 이해 하겠니, 못난 감자야?

진심

진심
심아진
 
이렇게 살면 안 돼. 우린 좀 더 투쟁적일 필요가 있어. 제도권에 속하지 못한 인간은 물렁해지고 납작해져서 겨우 체제가 필요로 하는 손수건 한 장이 될 뿐이니 말이야. 그 손수건으로 땀도 닦고 코도 푼다고? 그래, 가끔 빙빙 돌려 목에 감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별 수 있어? 그냥 손수건일 뿐이지. 급할 때는 용변을 처리하는 휴지로 전락될 수도 있는 게 손수건 한 장이야.
라이프니츠는 상대적인 우리 세계를 ‘신의 지성 안에 묻혀 있는 거대한 신비’에 의해 실존하는 유일한 세계로 보면서 두 세계가 결코 공존가능하지 않다고 보지. 라이프니츠를 해석한 들뢰즈에 의하면 죄인인 아담과 죄인이 아닌 아담은 모순 관계인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인 아담이 사는 세계와 죄인 아닌 아담이 사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상정해야 해. 나는 여기에 동의해. 두 세계는 공존불가능해.
세상이 이렇게 어수선한데 그림 따위를 보는 것은 사치야. 회화에서는 모든 개성들이 동시에 함께 일어나 우리 앞에 펼쳐지지만 시문학에서는 그렇지 않아. 시문학은 동일한 총체성이 되지 못하고, 표상은 그 속에 내포된 다양한 것을 순차적으로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지. 사실 이것은 결점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결점이야. 말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특성들이 순차적으로 나오더라도 그것들을 통일시키고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해서 표상의 이미지 속에 정착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 時文學은 文學이고, 또 學이야.
정말 우울해. 살고 싶지 않아. 왜 정언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담배는 몸에 좋다’는 건 전칭긍정이야. ‘어느 담배도 몸에 좋지는 않다’가 전칭부정, ‘어느 담배는 몸에 좋다’가 특칭긍정, 그리고 ‘어느 담배는 몸에 좋지 않다’는 특칭부정이 돼. 이게 어려워? 이 정언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가언명제나 선언명제는 어떻게 이해하겠어? 아무리 어려워도 이렇게 무지막지한 세상에 맨 몸으로 나가는 것 보다 어렵진 않을 거 아냐. 이해를 못하겠어. 난 지쳤어.
 
…….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투쟁적이어야 한다며 손수건에 관해 한 말은 결국 “무슨 일이 있어도 기득권에 속해야 한다.”는 엄마의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라이프니츠의 공존불가능성은 한 마디로 “그런 애랑 놀기만 해 봐.”이고, 칸트에서 훔쳐 왔을 시문학에 관한 명상은 그저 “스마트폰을 없애버려야 공부를 하지.”라는 푸념에 다름 아니었다. 마지막 단락은 당신도 알 것이다.
세상에, 담배를 피우다니!(담뱃값도 올랐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엄마, 제발 제 어릴 적 사진을 보면서 ‘엄마’라는 이름을 주어 감사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사실 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무서워요. 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학교 가는 제 뒷모습만 보아도 가슴 뻐근해진다고도 하지 마세요. 어디에 있든 담배를 피우지 않고서는 진정이 되질 않는단 말이에요. 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제 편이라고 하지 마시고, 저를 믿고 응원한다고도 하지 마세요. 결국 다른 애들 다 밟고 넘어서라는 얘기잖아요. 실수해도 넘어져도 좌절만 하지 않으면, 멈추지만 않으면 다 괜찮다구요? 맙소사, 어디까지 저를 몰아붙이실 건가요? ‘나 하나쯤 늙고 볼품없어지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 최악이어요. 제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고 있으니 그렇게 늙고 흉해지는 거여요.
이 모든 것을 용납하지 못 하겠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받아들여주세요. 엄마가 아무리 정의롭고 소신 있으며, 논리적이고 지적인 척 얘기해도 저는 엄마의 진심을 알아요. 엄마는 결코 엄마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이렇게 적힌 편지를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엄마,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심아진
 
우리 집 강아지는 밖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가끔 창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는 모습을 보면 호기심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산책을 나가자고 말하면 야단맞을 때처럼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애처롭게 죽는 시늉을 한다. 저나 나나 건강을 생각해야 하니, 억지로 차비를 하고 나간다. 아무도 없는 길은 잘 다닌다. 새로운 냄새도 맡고 신선한 공기도 쐬고,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사람이나 동물이 나타나면 움직이지 않고 격렬하게 짖는다. 무서워서 죽을 지경이라는 것을 녀석이 말 안 해도 나는 안다. 그러니 산책은 늘 강아지의 산책이 아니라 녀석을 안고 다니는-안으면 비로소 안심했다는 듯 짖지 않는다- 나의 노동으로 끝나고 만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2학년 때 담임이었던 할머니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셨다가 다시 우리 학교로 오셨다. 그분께서 반색을 하며 나를 아는 체 하셨다.
“정말 대단한 아이였어요.”
교무실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을 둘러보며 꺼낸 첫 마디였다. 얘기인즉슨 당시 자신이 여러 번의 수술을 거쳐 몸이 너무 아파 말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어린 내가 눈빛만 보고도 선생님이 원하는 걸 알고 야무지게 해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눈빛만 보고도’를 여러 번 강조하셨다. 칭찬해 주시는 소리였지만 나는 부끄러워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겨우 아홉 살, 무슨 눈치가 그렇게 빨랐던 것일까? 선생님의 칭찬 아닌 칭찬은 오랫동안 나를 자괴감에 빠뜨렸다.
중학생이 되었다. 작은 동네여서인지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 중 많은 분들이 가까운 나의 친지들과 아는 사이였다. 신경 써주느라 굳이 친지들을 들먹이며 불러내는 선생님들 때문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무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은데 상황은 자꾸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특히 인기 있는 남자 선생님의 관심은 그대로 내게 독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필요 없는 변명을 해대느라 진땀을 뺐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재수가 없었던지, 시골 동네에서 한 번 날까말까 한 수재 선배의 뒤를 내가 이어야 했다.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참가했던 모든 대회를 나도 참가했다. 대부분 예선에서 탈락했고 나는 학교 명예에 먹칠을 하는 후배가 되었다. 최악은 장학퀴즈였다. 정답 ‘신선로’를 ‘전골’이라고 답한 뒤로 나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혀를 내밀었다 넣었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보 같은 내 얼굴이 시골 동네에 알려졌다. 내가 결코 원한 게 아닌데 말이다.
대학생이 되었다.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울까봐 강의가 끝나면 허둥지둥 책을 챙겨 기숙사로 달아났다. 꼭 가야만 하는 것인 줄 알고 갔던 전체 M.T를 제외하고 더 이상 단체 생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처럼 캠퍼스에서의 내 걸음은 지나치게 빨랐다. 마지막 학기에 촬영 실습을 하면서 다시금 브라운관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기겁을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실습실을 폭파시켜 버리고 싶었다.
이제는 안다. 내가 왜 과민하게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썼는지, 왜 그들의 생각을 크게 느꼈는지, 왜 밤새 잠을 못 이루며 시시한 것들을 곱씹고 있었는지를 안다. ‘나’, 이 세상에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나의 조각이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자 했을 때, 혹은 억지로 바꾸고자 했을 때 나는 늘 진땀을 흘리며 이전보다 더 혹독한 자학을 일삼아야 했다. 그래서 마음을 좀 바꿨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아마 그런 자포자기가 소설을 쓸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소심하고 예민하며 과대망상을 일삼았던 시간들이 결국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지금의 내 소설이 편집증적인 폐쇄성을 보인다고 한다면,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폐쇄성을 딛고 일어서서 심미적 개방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문학은 꼬질꼬질하고 빈약한 세계도, 헌걸차고 호방한 세계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커다란 문학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 문학을 의지한다.


  날이 좋아지면 강아지와 산책을 좀 더 할 것이다. 자주 데리고 나가면, 열 번 짖을 거 한 두 번쯤 덜 짖지 않을까. 그러나 많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 집 강아지는 동네의 모든 사람들에게 반갑게 꼬리를 치는 그런 강아지는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주인을 닮는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시키지 않은 내 탓일 것이다. 그러나 대신 집에서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는 걸로 만족하지 않을까? 강아지의 마음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 어찌하겠느냐 말이다. 이렇게 소설을 쓰고 있는 걸 어찌하겠느냐 말이다.